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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히 스며든 가을비”…청주에서 만나는 촉촉한 하루의 쉼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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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청주에서는 비 오는 날 산책을 즐기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예전엔 흐린 하늘을 멀리했지만, 지금은 맑은 빗줄기 아래서 하루를 천천히 걸으며 고요함을 누리는 사람이 많아졌다. 사소한 변화지만, 그 안엔 자연을 대하는 우리 삶의 태도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청주에선 흐린 가을비 속, 상당산성 오솔길을 따라 걷는 가족들이 눈에 띈다. “비에 젖어 더 짙어진 흙냄새, 성벽 사이로 스며드는 물안개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는 한 방문객의 소박한 소감처럼, 이날 산성에는 잔잔한 정적이 깃든다. 우암산과 무심천이 감싸는 도시는 그 자체로 촉촉한 안식처다. SNS에는 비 내리는 풍경 옆따라 걷기, 청주랜드동물원 인증샷, 우비 입은 아이들의 모습이 북적인다.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청주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청주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한국관광공사 지역 관광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 내 우중 산책·실내 체험형 관광지를 찾는 가족 단위 방문이 꾸준히 늘고 있다. 특히 2020년대 들어 청주의 자연 체험 목장, 역사 산책로, 동물원 등 야외와 실내를 아우르는 장소가 인기를 끌면서 ‘비 오는 날 나들이’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던 습한 날이, 지금은 새로운 감각으로 일상을 환기시키는 시간으로 자리 잡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을 ‘날씨의 감성 소비’라 부른다. 생활문화연구자 김진수 씨는 “흐린 날, 빗속에서 느끼는 촉촉함은 현대인의 정서에 여유를 더하고, 아이들에겐 자연의 변화라는 교과서 이상의 경험을 선사한다”고 설명했다. 청주에서는 그런 감각을 실제로 체험할 공간이 충만하다.

 

특히 다래목장은 촉촉한 비 내릴 때 더욱 빛난다. 실내 유제품 만들기는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자연과 식탁이 이어지는 경험을 선물한다. 한 학부모는 “직접 우유 짜기, 치즈 빚기는 쏟아지는 비와 함께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고 표현했다. 동물원 나들이 역시 평소보다 한산한 대기 속에서 천천히 동물과 교감하고, 넓은 실내전시 구역에서는 온가족이 포근하게 시간을 보낸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비 덕분에 청주의 숨은 매력을 새로 알았다”, “흐린 날씨가 오히려 가족과 오붓하게 이야기 나눌 기회를 준다” 등 긍정적인 경험담이 잇따른다. 비가 불편이 아닌, 잠시 쉬어가는 ‘힐링’의 시간으로 받아들여지는 모습이다.

 

청주에서의 가을비는 낭만 이상의 의미다. 우산을 들고 걷는 산성길, 창 너머 보이는 안개에 잠긴 동물원의 풍경, 아이 손을 꼭 잡고 계단을 오르는 목장까지. 아주 작고 조용한 순간들이지만, 빗물에 씻겨 선명해지는 삶의 단면을 마주하게 한다. 지금 이 변화는 누구나 겪고 있는 ‘나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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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상당산성#다래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