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 공장 폐쇄 파장”…스리랑카 대규모 해고에 노조·현지 경제 흔들려→미국 관세 정책에 주목
안개가 깔린 새벽, 스리랑카 카투나야케 자유무역지대의 고요한 공장지대에 갑작스러운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영국의 대표적 패션 브랜드, 넥스트가 이곳에서 한 시대의 막을 내렸다. 수년간 번영과 분투가 공존하던 생산라인은 이제 차가운 정적 속에 잠기고, 1,416명의 노동자들은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었다. 산업의 요람이라 여겨졌던 곳이, 어느덧 불안정과 상실의 상징으로 바뀐 셈이다.
넥스트의 이번 공장 폐쇄는 단편적인 경영 위기 만이 아닌, 스리랑카 의류 산업 전체에 던지는 거센 파문이다. 현지 사측은 누적된 적자를 피력하며 이해를 구하지만, 노동조합은 반발의 목소리를 높인다. 조합원 800여 명의 생계가 일순 배제된 채, 일방적 구조조정이 단행된 탓이다. 안톤 마르쿠스 등 노조 측 관계자는 회사의 주장에 반박하며 법적 대응 방침을 천명했다.

이 같은 구조조정의 이면에는 국제 통상환경의 냉기가 짙게 깔려 있다. 미국이 스리랑카산 의류에 대해 도입키로 한 44% 상호관세율이 90일간 유예되었지만, 10% 기본 관세는 여전히 벽처럼 가로놓여 있다. 글로벌 공급망의 약한 고리로 떠오른 스리랑카는, 세계 각지의 관세와 투자 심리 위축에 몸서리를 치는 것이다.
지난해 스리랑카 의류산업은 47억6천만 달러 수출로 전년 대비 성장했으나, 국가부도와 경제정책 실패라는 암운이 거대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힘겹게 등에 업고 되살아나고자 하나, 각종 외부 변수가 또다시 일상과 산업 현장의 불안을 자극하고 있다.
현지 노동계는 법원 제소와 항의를 잇는 동시에, 생계를 잃은 가족들과 미래를 위한 석연찮은 싸움을 예고한다. 일자리 상실의 아픔은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스리랑카 경제 자체의 재정립을 재촉하는 비상등이 됐다. 한편, 국제사회는 이러한 구조조정이 남아시아 생산기지의 지형도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그리고 연쇄적 고용 충격이 이어질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넥스트의 결단은, 세계 공급망과 규제의 파고 속에서 신흥시장 경제, 그리고 현장 노동자의 자리를 다시금 되묻게 한다. 이 땅의 많은 이들이 지닌, 오늘의 슬픔과 내일의 희망은 아직 오롯한 해답을 찾지 못한 채, 고요한 아침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