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IRA 도입 필요”…김정관 산업장관 후보자, 반도체·이차전지 세액공제 추진 강조
정부의 첨단산업 지원정책을 둘러싸고 정치권과 정책 라인에서 치열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가 반도체와 이차전지 소재 분야에서 이른바 ‘한국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인 생산세액공제 제도를 우선 도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야가 첨단 산업 경쟁력 강화와 경제 안전망 구축을 명분으로 각기 다른 인센티브 방식을 제시하는 가운데 정국의 쟁점으로 부상한 모습이다.
15일 국회에 제출된 인사청문회 답변서에서 김정관 후보자는 “통상 리스크 최소화를 위해 경쟁국에 뒤지지 않는 인센티브 등 전략적, 적극적 정부 주도의 산업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반도체 및 이차전지 분야에 우선해 생산세액공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구체적 방침을 제시했다. 이어 “급변하는 대외 불확실성에 대응하고 우리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강력한 반도체 정책을 추진하겠다”며 재정·세제 지원과 산업 기반 강화 의지도 분명히 했다.

김 후보자는 반도체 분야에 대해 “메모리 부문은 글로벌 선두를 유지하고 있으나 중국, 미국 기업의 본격 추격이 시작됐다"고 진단했다. 또 시스템반도체 경쟁력 전반에 대해서는 "취약하다"는 인식을 내비쳤다. 이에 대해 그는 "첨단 반도체 생산 기반 강화, 생산세액공제 등 실질적 지원책 확대가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이차전지 산업과 관련해서는 전기차 시장 조정, 중국의 공격적 행보로 인한 위기 상황을 지적하며 “국내 생산과 투자를 유도할 인센티브 확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핵심 광물과 소재에서부터 우선적으로 생산세액공제 도입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생산세액공제 제도는 생산량만큼 세금이 공제되는 방식으로, 현행 대기업 투자 세액공제와 달리 실질적 보조금 효과가 큰 제도로 평가된다. 미국이 전략산업 육성을 위해 도입했던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와 유사한 형태다. 미국은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산업에 막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생산기지 유치 경쟁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다.
그러나 그간 한국 정부는 반도체 등 첨단산업 투자에 일회성 투자세액공제(최대 20%)만 적용해 지원 규모가 제한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따라 재계와 산업계 안팎에선 “전략 경쟁이 본격화된 상황에서 미국 등 주요국과 비슷한 수준의 생산세액공제, 직접 투자 보조금 정책이 조속히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치권 역시 생산세액공제 도입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반도체, 이차전지 분야에 생산세액공제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반도체의 경우 국내 생산·판매 제품에 최대 10%의 생산세액공제를 적용하겠다는 구체적 공약을 밝혀 업계의 기대감을 키웠다. 업계에선 “해당 정책이 현실화될 경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은 연간 4조~5조 원대 세금 감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차전지의 경우엔 대선 당시 구체적 제도 내용이 명시되지 않았으나, 김정관 후보자가 공급망·핵심 광물 등 소재 부문을 우선 지원 대상으로 삼겠다고 한 만큼 정책 추진력이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특히 K-배터리 산업은 중국에 대한 공급망 의존도가 높다. 소재 기업 대상 생산세액공제는 독립적 공급망 구축의 핵심”이라고 전했다.
김정관 후보자는 기획재정부 1차관, 산업연구원과 산업부 국장 등을 거친 경제 관료 출신이다. 최근까지 두산에너빌리티 마케팅 부문 사장으로 재직했으며, 현직 기업인 출신으로는 드물게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에 지명됐다.
이처럼 정치권과 산업계가 첨단산업 경쟁력 강화와 지원 정책을 둘러싸고 논의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국회는 오는 17일 인사청문회에서 김정관 후보자의 정책 구상과 실행력에 대해 본격적인 검증에 나설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