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 지도 반출 불가 방침 고수”…한국, 한미 협상서 데이터 주권 수성 분수령
정밀 지도 반출 규제의 운명이 한미 정상회담 테이블 위에 올랐다. 축척 1대 5000 이하의 고정밀 지도를 둘러싼 국외 반출 논란은 한국 정부가 안보와 데이터 주권을 근거로 ‘불가’ 방침을 고수하면서, 미국의 디지털 무역 압박과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업계와 학계는 이번 정상회담을 ‘디지털 주권 경쟁의 분기점’으로 보고 향후 결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3월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NTE)’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의 대표적 디지털 무역 장벽으로 지목했다. 이후 관세 협상 과정에서 미국 정부는 정밀 지도 개방을 공식 요구했으나, 한국은 “추가 양보 없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3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지도 반출 합의에 추가 양보는 없다”며 안보 사안을 정상회담의 별도 의제로 언급했다.

정밀 지도는 군사기밀 정보와 결합되면 안보 위협으로 직결될 수 있다. 위성영상, 항공사진 등 외국 기업이 가진 데이터와 합쳐질 경우 중요한 국가기반시설이나 주요 보안시설의 위치·구조까지 고스란히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민 세금으로 축적된 공공 데이터를 무상 제공하는 것은 형평성 논란도 야기한다.
한국 정부는 데이터센터 설치 및 보안 시설 블러 처리 등 일정 조건 아래 반출 협상을 시도했으나, 구글 등 해외 기업이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서 2016년과 올해 모두 반출 요청이 불허됐다. 애플 역시 유사한 조건으로 올 상반기 정밀 지도 반출을 신청했으나 허가 가능성은 낮게 점쳐진다.
업계와 학계는 지도 데이터가 산업 주권과 데이터 통제권의 상징이라면서, 한미 정상회담의 최종 결론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특히 구글, 애플 등 글로벌 운영체제를 가진 기업들의 반출 요구와 미국 정보통신업계(ITIF, CCIA 등)의 정책 압박, 친 트럼프 성향 단체의 시장 개방 압박 등 글로벌 정치·산업 연대가 총동원된 양상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EU·일본 등도 자국 내 공간정보 데이터의 외국 반출을 제한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미국 역시 군사용 지도 데이터는 엄격한 현지화를 요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협상 결과가 향후 동아시아 데이터 주권, 국방 첨단화, 글로벌 위치 사업 시장 재편에 중대한 시금석이 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
한편 한국측량학회장 김원대 교수는 “정상회담에서 정책 기조가 변동 가능성이 남아 있다”며 단일 거부로 최종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고 전망했다. 업계 역시 갑작스러운 입장 변화 시 국내 위치 기반 산업·보안 생태계에 미칠 실질적 충격을 경고하고 있다.
산업계는 향후 한국 정부가 실제로 데이터 주권과 보안 전략을 끝까지 사수할 수 있을지, 그리고 한미 간 첨예한 디지털 산업 통상 패권 경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지 주시하고 있다. 기술과 안보, 산업과 규제의 균형이 이번 협상의 새 성장 조건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