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투자·방위비 ‘트럼프 압박’”…대통령실, 미 협상 전방위 고심
소고기 수입 확대, 대미 투자,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가 쏟아지는 가운데, 한국 정부가 선택의 기로에 섰다. 한미 양국은 오는 8월 1일로 예고된 25% 상호관세 부과 시한을 앞두고 합의점 마련을 위해 막바지 협상에 돌입했다. 무역을 넘어 안보까지 압박 수위가 높아지면서 대통령실 등 최상위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16일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 내 통상 라인에 따르면, 미국의 주요 요구는 농산물·디지털·자동차 세 분야에 집중돼 있다. 미국은 관세 부과를 지렛대로 삼아 에너지·농산물 구매 확대, 자동차 무역 불균형 해소, 한국의 대미 투자 증대 등 구체적 ‘숫자’를 제시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특히 미국산 쇠고기 30개월 이상 수입 허용, 쌀 수입 쿼터 확대, 사과 검역 완화, 유전자변형생물체(LMO) 수입 허가 등이 핵심 쟁점으로 부각됐다.

디지털 분야에서는 온라인 플랫폼법, 망 사용료 부과 계획 철회, 구글 정밀지도 반출 등 한미 간 온도차가 이어지고 있다. 자동차 부문에서 미국은 한국의 일방향 수출 흐름을 문제 삼으며 압박 강도를 높였다. 2024년 기준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556억 달러, 이 중 자동차 흑자만 320억 달러를 차지했다는 정부 수치가 이를 뒷받침한다.
여기에 미국은 현대차그룹 등 한국 기업의 대미 신규 투자 확대,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참여 등 ‘제2의 국부펀드’ 조성도 주문하고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을 만나 일본의 투자 펀드 제안을 언급하며 “한국 정부도 대규모 투자 방안을 마련해주길 바란다”고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보 분야 ‘슈퍼 패키지’ 성격도 짙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연간 100억 달러로 인상,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비중 확대 등도 관세 협상과 연계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 농림축산식품부 등 내부 의견 수렴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실제로 산업통상자원부는 대미 무역 의존도를 고려해 전향적 합의 필요성을 시사하지만, 농림축산식품부는 “농민 희생에 대한 우려가 크다”며 신중론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 내 합의가 쉽지 않자, “대통령실 차원의 최종 결단이 불가피하다”는 기류가 강해지고 있다.
여기에 농민단체는 농산물 추가 개방에 강력 반발했고,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농민이 희생자가 될 수 없다”며 공동성명을 내는 등 정치권도 압박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무역 협상 결과를 좌우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계산”이라며, 수입 확대와 투자 약속 등 직관적 숫자 제안이 불가피하다는 진단을 내놨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역시 “정부와 국회 간 고위급 조정 및 이해관계자 설득이 시급하며, 대통령실이 전면에 나설 시기”라고 강조했다.
이날 정부는 미국의 압박 속에서 핵심 민감사안을 어떻게 조정할지 막바지 내부 논의를 이어가고 있으며, 최종 결단은 대통령실 차원의 조정 후 나온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향후 정부는 업계·농민·정치권과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며 한미 협상에 임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