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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하늘, 적시는 파도”…당진 해안을 걷는 날의 고요한 위로

신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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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일부러 흐린 날 해안을 찾는 사람이 늘었다. 예전엔 ‘비 오는 날 바다’가 왠지 쓸쓸해 보였지만, 지금은 촉촉한 분위기 속에서 조용한 산책과 사색을 즐기는 것이 당진 여행의 새로운 일상이 됐다.

 

13일 오후 충남 당진은 납빛 하늘과 잔잔한 빗줄기가 어우러지며, 지역 곳곳의 해안 풍경이 한층 더 서정적인 멋을 뽐낸다. 왜목마을 해수욕장은 석문면 교로리 바닷가에 아담하게 펼쳐져 있다. 독특하게도 해 뜨기와 해 지기를 모두 볼 수 있는 해변으로 유명한 이곳. 잔잔한 파도 소리와 부드러운 빗방울이 섞여, 방문객들은 마치 위로라도 받는 듯 차분한 마음으로 바다를 바라보곤 한다. SNS에서는 ‘흐림 인증샷’과 함께 조용한 해안 산책이 당진의 새로운 매력으로 호응을 얻고 있다.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당진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당진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최근 한국관광공사 자료에 따르면, 비 오는 날을 택해 지방의 해안 도시를 방문하는 이들이 MZ세대를 중심으로 꾸준히 느는 추세다. 당진 역시 산책로와 공원이 잘 정비된 탓에 빗속 산책에 대한 평가가 높다. 삽교호바다공원에서는 잔잔히 내리는 빗방울이 드넓은 호수 위 수면을 두드리고, 조형물들과 휴게 공간들은 우산을 든 방문객들의 사진에 자주 등장한다.

 

여행 트렌드 분석가 이수현 씨는 “요즘은 빠르고 화려한 여행보다, 잠시 멈춰 서서 조용한 자연에서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중시하는 흐름이 강하다”고 표현했다. 그만큼 차분한 감성, 그리고 삶의 본질에 가까워지는 기회로 흐린 날의 해안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해석이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친구와 수다를 덜어내고 조용히 걷는 시간이 더 소중했다”, “빗소리와 파도 소리가 섞이니 괜히 위로받는 기분”, “비 오는 날 당진에서는 그저 걷기만 해도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다”는 식의 공감이 많다. 누군가는 당진필경사의 조그만 사랑방에 가만히 앉아, 심훈 선생의 ‘상록수’를 떠올리며 지난 시간을 돌아본 경험을 소박하게 남기기도 한다.

 

그저 산책과 사색, 그리고 잔잔한 파도 소리와 빗소리. 흐린 하늘 아래 해안을 걷는 일은, 작지만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춤으로써 나 자신을 돌보는 방법이 되고 있다. 지금 이 변화는 누구나 겪고 있는 ‘나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신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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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왜목마을#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