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하늘 아래 걷는 도시”…대구 곳곳에서 만나는 활기와 전통의 온기
요즘은 흐린 날에도 대구 거리를 걷는 사람이 많아졌다. 예전엔 맑은 날만이 산책의 계절이라 여겨졌지만, 이제는 흐릿한 회색빛 도시 풍경 속에서 오히려 고요한 일상을 찾는 이들이 드물지 않다.
13일 오전, 대구광역시는 19.8°C의 선선한 공기와 동남동에서 불어오는 2.7m/s의 바람 사이로 흐린 하늘이 이어졌다. 하지만 거리 곳곳에는 평소와 다름없이 각자의 리듬으로 걸음을 옮기는 시민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도심의 중심, 동성로에는 다양한 상점과 공연장이 어우러져 활기가 넘쳤다. 제일2극장, 해바라기극장, 한일극장 등에선 저마다의 문화가 살아 숨 쉬고, 번화한 거리에선 누군가의 일상이 조용히 흐른다.

조금은 중심을 벗어난 달성군 화원읍의 남평문씨본리세거지는 완연히 다른 온도로 사람들을 맞아준다. 정돈된 산책로와 고즈넉한 한옥 마을이 전하는 분위기는 걷는 이의 일상에 조용한 쉼표를 찍는다. 단풍이 짙게 물드는 가을이면 더욱 아름다운 풍경이 연출되며, 방문객들은 돌담길을 천천히 거닐며 오래된 한국의 정취 속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담는다. SNS에는 이곳에서 찍은 사진이 매일같이 업로드되고, 가족과 연인, 혼자만의 산책까지 다양한 모습이 포착된다.
또한 대구 북구 관음동의 신전뮤지엄은 이런 도시 산책의 또 다른 발길을 이끈다. 떡볶이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며져, 추억과 체험을 동시에 안겨준다. 아이들과 함께 방문한 한 가족은 “떡볶이에 이런 이야기가 있는 줄 몰랐어요. 직접 만들어보니 옛날 생각도 나고, 새로운 경험 같아요”라고 느꼈다. 실제로 기자가 방문한 현장에는 가족은 물론 20대 청년들, 외국인 관광객까지 다양하게 모여 사진을 찍고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한국관광공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대구 도심 산책과 문화 체험 관련 문의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주말마다 동성로와 전통 한옥마을 방문객이 작년보다 눈에 띄게 늘었다는 설명이다. 트렌드 전문가들은 “걷는 일상에서 발견하는 도시는 큰 이벤트보다 소소한 공간, 익숙한 풍경에서 이야기와 감정의 결을 찾는 시대가 됐다”고 표현했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비 오는 날의 동성로가 더 매력 있다”, “남평문씨본리세거지에서 찍은 사진은 액자에 넣었다”는 공감 어린 경험담이 여러 곳에서 공명한다. 그만큼 도시는 매일의 얼굴이 달라지고, 흐린 하늘조차 산책의 이유가 된다.
조용하지만 살아 있는 대구의 오늘은, 번화와 전통이 한 발짝 간격으로 어우러져 있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