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 산증인 김영규 전 주한미군 공보관 별세”…반세기 협력의 가교 지다
한미동맹의 깊은 역사를 함께한 김영규 전 주한미군 공보관이 2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8세. 양국간 군사협력의 중요한 순간마다 현장의 목소리를 기록하며, 44년간 주한미군과 한국사회 사이의 가교 역할을 맡아온 인물이었다.
김영규 전 공보관은 연세대학교 역사학과를 졸업한 후 1976년 30세에 카투사로 군 복무를 시작했다. 그는 경기도 동두천 미 2사단 공보실에 배속돼 ‘인디언 헤드’ 기자로 활동하면서 언론과 군을 잇는 창구로 성장했다. 특히,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당시 미 2사단 대원들이 북한군과 대치하며 미루나무를 제거한 작전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그 기록을 남겼던 현장 증인이기도 하다.

전역 후에도 김 전 공보관은 미 2사단 공보실 정식 직원으로 채용돼 지속적으로 미군의 대언론 소통 창구 역할을 수행했다. 1985년부터는 주한미군 공보실, 이후에는 주한미군사령부·한미연합사령부·유엔군사령부 공보관으로 근무하며 한미 군 당국 간 소통과 협력의 중심에 섰다.
업무기간 내내 그는 한미 양국 군의 주요 현안과 현장 상황을 전달하며, 대중과 미디어를 향한 신뢰 형성에 헌신했다. 동료들은 김영규 전 공보관을 “한미동맹의 산증인”이라고 평했다. 특히 북한과의 긴장 고조, 주요 연합훈련 등 굵직한 사건마다 신속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전하는 데 집중해왔다는 평가다.
정치·외교 현장에서는 그의 오랜 경륜이 한미동맹의 신뢰를 지탱하는 자양분 역할을 했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한 전직 국방 당국자는 “김 전 공보관의 언론협력과 현장 기록은 동맹의 투명성과 신뢰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밝혔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수진 씨, 자녀 김홍석·김민지 씨, 사위 조덕연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장례식장 31호, 발인은 28일이다. 장지는 천주교 용인추모공원으로 결정됐다.
주한미군 및 한미연합사 등 관련 기관에서는 김영규 전 공보관의 별세를 깊이 애도하며, 그의 헌신과 노력에 대한 추모와 평가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