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억달러 대미 투자 어디로”…트럼프, 원전·AI 인프라 중심 중점 운용 예고
대미 투자금의 용처를 둘러싸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국 정부 간 전략적 셈법이 첨예하게 맞붙었다. 3천500억달러의 한미 투자 패키지 중 2천억달러를 현금으로 투입하는 쟁점과, 이 거액이 에너지 인프라 등 지정된 영역에 집중될 경우 한국 기업의 실질적 이익 배분에 대한 우려가 정치권과 산업계를 중심으로 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다.
정부는 10월 29일 3천500억달러 대미 투자 패키지의 구체적 합의 내용을 공식 발표했다. 이 중 2천억달러는 현금(지분) 투자로 집행되는 방향이 확정됐으며, 나머지 1천500억달러는 조선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에 한국이 자율권을 갖고 집행한다는 방침이다. 한미 양국은 이미 각료급에서 투자 운용 원칙·방향을 담은 MOU에 상당 부분 합의했으나, 30일로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 방한 기간 중 공식 서명은 일정상 연기될 전망이다.

미국은 이미 일본에 5천500억달러 원전·SMR 중심 투자 사례를 들어, 한국 투자금 역시 AI 산업·첨단제조업·전력망 등 미래산업의 핵심 인프라에 투입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최근 미일 정부의 팩트시트에서는 대형 원전, 소형모듈원자로 건설 등 관련 사업에 전체 투자금의 절반을 넘어서는 3천320억달러가 집중 투입된다고 명시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서 추진되는 프로젝트에 또 다른 2천억달러 투자를 지시할 것”이라며 에너지 기반 시설, 알래스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핵심 광물, AI와 양자컴퓨터 등 전략적 산업을 1순위 투자처로 지목했다. 특히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는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의 장기 참여와 투자를 적극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은 원전 설계·공급망 기술 강점에도 불구하고, 스리마일섬 사고 이후 신규 인허가 공백으로 국내 건설 역량이 약화됐다. 이에 따라 미국은 2천억달러 규모의 현금 투자사업 선정 과정에서 일본에 이어 한국 투자금 상당액을 에너지 인프라—특히 원전—사업에 배치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미 에너지부 주요 인사들은 최근 잇달아 방한해 한국 기업의 원전사업 참여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여기에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투자위원회 위원장이자 ‘펀드 매니저’로서 알래스카 LNG와 에너지 인프라를 공동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면서, 미국 내 주요 전력망·원전 프로젝트 자금 집행 과정에 한국 자금 배분을 직접 총괄하게 됐다.
업계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일본 사례와 마찬가지로 미국이 자국 기업 우선권을 보장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음을 우려한다. 미일 합의에서 히타치, 도시바, 파나소닉 등 대형 일본 기업이 사업별 사업자로 지정된 점을 고려할 때, 한국 역시 투자금 집행 과정에서 한국 기업의 실질적 참여·수익 분배권 확보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우리 협의위원회가 전략적·법적 고려사항을 미국 투자위원회에 제시하게 돼 있고, 미국 위원회는 우리 측에 프로젝트에 대한 상세 정보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며 “한국인 프로젝트 매니저 선임 역시 조항에 포함돼 있다”고 강조했다. 또 정부는 일본 사례보다 개선된 조건 도출을 목표로, 투자처 선정과 프로젝트 운영 과정 전반에서 한국 기업의 참여권을 최대한 반영하겠다는 방침이다.
정치권은 트럼프 방한·미중 정상회담 등 정국 현안과 맞물려 대미 투자금 집행의 파장이 총선 등 국내 정치지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국회는 트럼프 행정부의 한국 투자금 요구가 과도하다는 일부 야당의 문제 제기와 동시에, 글로벌 공급망 전략 변화에 능동 대응해야 한다는 여당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정부는 향후 투자금 구체 집행 과정에서 한국 기업의 참여비율 확대 및 사업별 이익 배분구조 개선을 검토할 예정이다. 한미 양국은 차기 산업통상부 장관 방미 일정 등을 계기로 추가 협상을 이어갈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