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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밭에 스며든 가을”…순천만과 낙안읍성에서 만나는 일상의 여유

임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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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선택하는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빼어난 풍경에 이끌렸지만, 지금은 잠깐이라도 마음이 느려지는 곳이 일상 속 쉼표가 된다. 흐린 9월에 만난 전남 순천이 그런 곳이다. 자연과 역사가 숨 쉬는 이 도시에선 걷는 것만으로도 가을이 조금씩 스민다.

 

SNS에는 순천만국가정원을 배경 삼아 산책하는 이들의 사진이 쏟아진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세계 각국의 정원 양식이 어우러지고,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꽃과 나무는 누구에게나 평화를 안기는 듯하다. 정원 속 조형물 옆 벤치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는 사람들의 미소에서 여행이 주는 소소한 위로가 느껴진다.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순천만국가정원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순천만국가정원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순천만습지는 세계자연유산 지정 후 방문객이 꾸준히 늘었으며, 매년 가을이면 황금빛 갈대밭을 보기 위해 전국 각지의 가족 단위 여행객과 연인들이 찾는다. 습지 곳곳을 걷다 보면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갈대의 물결이 도시의 번잡함마저 지워주는 듯하다. 해 질 녘 용산전망대에 오르면 붉게 가라앉는 하늘과 굽이치는 수로가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전문가들은 이런 자연 친화적 장소에서의 소박한 여정이 삶의 태도까지 바꾼다고 설명한다. 여행 칼럼니스트 한지우는 “화려한 볼거리보다 한적한 산책, 바람 소리가 귀에 닿는 순간들이야말로 진정한 힐링”이라고 표현했다. 순천의 낙안읍성 역시 타임머신을 탄 듯한 감각을 선사한다. 100여 채의 초가집에 실제 사람들이 거주하며, 조선시대의 마을 풍경을 온전히 품고 있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갈대밭에 서 있으면 이유 없이 마음이 편해진다”, “아이와 함께 걷는 낙안읍성에서 잠시 할머니 집에 들른 기분이었다”는 공감이 쏟아진다. 자연과 전통, 그리고 일상 속 느린 시간이 주는 기쁨을 이제 많은 이들이 본능적으로 찾고 있다.

 

순천만의 물결과 낙안읍성의 돌담길을 거닐다 보면, 작고 사소한 선택이 사실은 삶의 방향을 가만히 바꾸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여행은 끝나도 그곳에서 마주한 평온함은 오래도록 우리 곁을 걷는다.

임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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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순천만국가정원#낙안읍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