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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중 해열진통제 자폐 위험?”…FDA 경고 논란에 WHO·EMA 반박

오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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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트아미노펜(해열진통제)의 임신 중 복용과 자폐증 위험 간 인과성을 둘러싼 논쟁이 재점화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임신부가 타이레놀을 복용하면 자폐증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며 미국식품의약국(FDA)의 경고 조치를 공개적으로 언급했고, 이에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럽의약품청(EMA), 글로벌 의료계는 즉각 반박 성명을 내놨다. 표면화된 논의 이면에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아세트아미노펜의 안전성, 약물과 신경발달장애의 인과 관계를 평가하는 임상연구 한계, 산모와 태아 건강에 대한 공중보건적 의사결정 기준 등 복합적 쟁점이 숨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2000년 이후 자폐증 비율이 400% 넘게 상승했다”며 “FDA는 타이레놀에서 자폐증 위험을 경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FDA 역시 아세트아미노펜 성분 제품의 라벨 변경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근거로 제시된 것은 2019년 존스홉킨스대 연구로, 임신부 제대혈 내 아세트아미노펜 농도가 높을수록 자녀의 자폐증, ADHD 발현 확률이 2.14~3.62배 증가했다는 관찰 결과다. 해당 논문은 미국의학협회 학술지(JAMA)에 등재됐다.

하지만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 등 미국·스웨덴 공동 연구팀은 2024년 JAMA 네트워크를 통해, 스웨덴의 248만여명 어린이의 건강기록을 분석한 대규모 인구기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에서는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 복용과 자폐증, ADHD, 지적장애 간 연관성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친형제·자매 대조군 분석을 포함한 해당 연구는 미국국립보건원(NIH)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으며, 통계학적으로도 신뢰도가 가장 높은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임상의와 학계는 이처럼 연구설계의 차이와 관찰연구의 한계에 주목한다. 안준용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는 “2019년 논문 등은 신뢰도가 높다고 보기 어렵고, 2024년에는 훨씬 정교한 설계의 대규모 연구에서도 연관성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임신부 건강에 있어 근거 없는 우려가 사회적 불안을 키울 수 있다”며 “FDA 내부에서도 공식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견해가 다수”라고 덧붙였다.

 

공식 가이드라인도 논란에 선을 긋고 있다. 미국 산부인과학회(ACOG)는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 사용과 자폐증, ADHD, 지적 장애의 인과 연관성은 20년 이상의 연구에서 확인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WHO 역시 “광범위한 연구에도 불구하고 자폐증과의 일관된 연관성은 입증되지 않았다”며 기존 권고를 유지하고 있다. EMA 역시 현재까지 임신 중 파라세타몰(아세트아미노펜) 사용과 자폐증 사이에는 과학적 관련성이 없다는 입장이다.

 

의료계는 임신부의 고열 등 발열 상태 자체가 태아에 더 큰 위험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최석주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임산부의 고열은 무뇌아 등 심각한 기형을 초래할 수 있다”며 “아세트아미노펜은 현재로서 가장 안전하다고 평가된 해열진통제”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아세트아미노펜은 국내에서만 1300개 이상의 단일·복합제 허가 품목이 있을 만큼 널리 사용된다.

 

다만 아세트아미노펜과 신경발달장애의 관계를 최종적으로 입증하려면 무작위 대조 임상연구(Randomized Controlled Trial)가 필요하지만, 윤리적·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여러 후향적 연구가 병행 중이다. 최 교수는 “논문 1~2편이 아니라 다수 종합적 연구와 전문가 의견을 바탕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약물 안전성 논란이 공중보건정책, 소비자 심리, 관련 약제 시장에 파급을 줄 수 있다고 진단한다. “산업계는 이번 논란이 정확한 연구 평가와 투명한 위험정보 제공이라는 원칙 안에서 해소될지 주목하고 있다.”

오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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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아세트아미노펜#w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