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림 속에서 만나는 경주”…실내외 명소 조합이 만든 새로운 여행법
“경주 여행은 꼭 맑은 날에만 간다는 생각, 어느새 달라졌다. 비가 오거나 무덥고 흐린 날에도 이 도시의 풍경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계획보다 순간과 기분을 중시하는 여행자가 많아진 영향이다.”
요즘 경주를 찾는 이들은 날씨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 실제로 SNS에는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한 월정교의 인증샷, 비 내리는 날 보문관광단지에서의 산책 사진이 부쩍 늘었다. 여행객 김지연(32) 씨는 “실내외 명소를 유연하게 섞을 수 있어 여름 경주에 오히려 더 끌렸다”고 고백했다.

이런 흐름은 숫자에서도 확인된다. 한국관광공사의 모바일 통계에 따르면 경주의 숙박·레저 시설 이용은 6~8월 꾸준히 증가하며, 흐린 날씨나 소나기 예보 시에도 관광객의 실내명소 방문 비중이 3년 전보다 높게 나왔다. 특히 보문관광단지는 야외놀이와 실내전시장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가족·커플 모두에게 인기다.
경북천년숲정원과 같은 자연 명소도 더위를 피하는 힐링 코스로 꼽힌다. 넉넉한 숲길, 그늘 아래에서 한숨 돌리며 산책하는 것은 흐리고 눅눅한 날씨에만 느낄 수 있는 정취를 선사한다. 반면 신나는 액티비티를 원하는 이들은 경주루지월드에서 짧은 시간 바람을 가르는 경험에 몰입한다. “체감온도가 높아도 바람을 맞고 내리달리면 어느새 더위가 잊히는 기분”이라는 후기 역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변화된 휴가 풍속을 ‘즉흥과 조합의 여행’이라 이름 붙인다. 트렌드 칼럼니스트 박유정 씨는 “날씨에 휘둘리지 않고 즉시 일정과 동선을 조정하려는 라이프스타일이 확산됐다”며 “경주는 그만큼 다양한 옵션으로 여행의 유연함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고 짚었다.
일상 속에서도 이런 변화는 공감된다. 누구 한 명이 “오랫동안 걷다가 갑자기 소나기가 오면 카페로 이동하거나, 실내 전시관에서 천천히 다음 플랜을 짜게 됐다”고 표현한 듯, 여행의 즉흥과 숨 고르기가 자연스러워졌다. 댓글 반응도 “경주는 흐려야 더 운치 있다”, “이번엔 동굴과 숲길, 다음엔 야경… 매번 새롭다”는 식의 응원이 많다.
경주의 흐린 하늘, 예상치 못한 소나기, 열기에 취약한 여름날은 이제 여행을 포기하는 요인이 아니라, 새로운 선택의 시작점이 됐다. 실내와 실외, 자연과 전통, 액티비티와 휴식이 맞물리는 경주는 단지 관광지가 아니라 ‘내가 머물고 싶은 방식’을 실험하는 작은 무대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