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포기하면 대화 가능”…김정은, 트럼프에 회동 손짓하며 한반도 정세 변수로
비핵화 의제를 둘러싼 북미의 이견이 다시 한반도 정세의 요동으로 번지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이 비핵화 목표를 접으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겠다는 신호를 쏘아올리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내달 방한을 계기로 북미 정상이 물리적으로 근접하게 되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새로운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21일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김 위원장은 “만약 미국이 허황한 비핵화 집념을 털어버리고 현실을 인정한 데 기초해 우리와의 진정한 평화 공존을 바란다면 우리도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또 “나는 아직도 개인적으로는 현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해 개인적 관계를 부각했다. 직접적 만남 가능성을 처음으로 조건부 시사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최근 여러 차례 김 위원장과의 친분을 강조하며 “김정은과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한미정상회담 때도 '연내 김 위원장과의 만남'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특히 올해 10월 31일부터 경주 APEC 정상회의 개최가 예정된 가운데, 김 위원장의 참석 가능성은 낮지만 두 정상의 '깜짝 접촉' 가능성을 둘러싼 관측이 나온다.
다만 북미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김 위원장이 비핵화 포기를 요구하면서, 실질적 교착국면은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미국과 한국 정부 모두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를 공식 확인하고 있어, 선뜻 논의의 접점을 찾기 어렵다는 현실적 지적도 나온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북핵 동결이 “임시적 비상조치로서 실행 가능하고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중단하도록 하는 것에 명백한 이점이 있다”며, 비핵화라는 장기 목표는 유지하되 동결을 우선 추구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북미 교섭의 초점이 '핵보유국 현실 인정'과 단계적 해법을 오가고 있다고 분석한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와 국가 간 양자관계 정상화를 노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결단을 내릴지 여부가 만남 재개를 가를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과거 북미가 동결마저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사례에 비춰 이번 논의가 자칫 북핵을 사실상 용인하는 기조로 귀결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특히 김 위원장은 이날 연설에서 “한국과 마주 앉을 일이 없으며, 일체 상대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다”고 밝혀 남북 대화의 여지를 강경하게 차단했다. 외교가에서는 북미 간 직접협상에서 한국이 빠질 수 있다는 ‘코리아패싱’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는 경주 APEC 정상회의 전후 한미 간 공조와 북미, 남북 간 논의 흐름을 예의주시하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을 위한 복수의 외교 채널을 점검 중이다. 향후 북미 대화가 재개된다 해도 비핵화 해법‧한국 역할을 둘러싼 정치권 논쟁은 장기화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