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감옥, 엄기준 목소리에 스민 시간”…영웅의 고독→무대 위 심장을 두드리다
서대문형무소, 감옥이라는 무정한 공간이 한 인간의 목소리로 다시 태어난다. MBC 광복 80주년 특집 뮤지컬 다큐멘터리 ‘모범감옥’에서 내레이터 엄기준이 ‘나는 서대문형무소다’라는 선언으로 시대의 기억을 깨운다. 빛바랜 담장 안, 강우규부터 유관순, 김구, 안창호, 한용운에 이르는 수많은 이들의 고독과 청춘, 절망이 오롯이 오늘로 소환된다.
특별기획 ‘모범감옥’은 일제강점기의 서대문형무소를 인격체로 의인화한 도발적인 화법으로 시작된다. 엄기준의 단단한 목소리는 고문실, 사형장, 좁은 옥사 등 공간마다 각인된 투쟁의 흔적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이 역사적 무게 위로 뮤지컬 무대가 펼쳐지며, 서범석, 하도권, 고훈정, 신창주, 송영미, 김찬종 등 각기 다른 결을 가진 배우들이 독립운동가의 얼굴과 목소리로 시청자의 영혼을 흔든다.

눈길을 끈 것은 고훈정이 연기하는 안창호 선생의 진정성이다. 고훈정은 극중 인물의 고통을 몸소 체화하기 위해 혹독한 단식과 근력 운동을 반복했고, 이는 배역에 대한 깊이 있는 몰입을 이끌어냈다. 뮤지컬 ‘빨래’, ‘렛미플라이’, ‘태일’의 내공을 지닌 민찬홍 작곡가와 장우성 작가가 합심한 8개의 넘버는 삶과 죽음, 희생과 소망의 경계를 촘촘히 갈라놓았다.
‘모범감옥’은 단순한 전기나 기록물이 아니다. 배우들의 열연, 뮤지컬 넘버, 체험적 재연, 화면의 강렬한 콜라주가 어우러지며, 서대문형무소 안의 시간들이 증언자이자 주체로 변모했다. 최근 공개된 흑백 티저 영상 속 엄기준의 절제된 프리젠터 연기와 배우들의 긴장감 넘치는 표정이 공간의 침묵을 관통했다.
이 작품은 역사의 무게와 인간의 존엄, 공간의 질문을 동시대에 던진다. 서대문형무소라는 공간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새로운 형태의 기억서사. 독립운동가들의 이름, 남겨진 목소리, 견디던 손끝의 기록 모두가 두 편에 나누어 깊숙이 새겨진다. ‘모범감옥’은 8월 16일과 23일 토요일 밤 8시 40분에 시청자 곁으로 다가올 예정이다. 80년 전의 시간을 건너온 이 공간의 울림은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