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문실·마을 기억해낸 한국전쟁의 이면들”…모니카김·박찬승, 분단의 일상→역사적 공감대 확산
비 내리듯 분단의 시간 위로 쏟아진 포성 속, 모니카 김 교수와 박찬승 교수의 시선은 전장 밖에서 몸을 부르르 떠는 보통 사람들에게 닿아 있었다. 한국전쟁의 기억을 그래서 다시 쓰기 시작한 이들의 저작은 수십 년을 관통한 분단의 일상, 숨죽여 살아야 했던 평범한 이들의 내면 풍경을 비춘다. 심문실의 조용한 긴장과 마을이라는 울타리에서 공존과 배반을 경험한 수많은 이름 없는 이들이, 이제는 역사의 한복판에서 조용한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전쟁의 발화점에는 일제강점기의 잠식, 신탁통치에 대한 분노와 갈등이 고여 있었다. 일본과 미국 모두 한반도를 주권국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해방 뒤에도 식민주의의 그늘은 지워지지 않았다. 미군정은 신탁통치에 대한 반발과 불신이 번지면서 방첩대를 만들어 남한 내 공산주의자를 색출했고, 첩자와 간첩, 반공과 친공, 어느 한 진영도 쉽사리 내면을 완전히 드러낼 수 없었다. 한국인은 생존을 위해 여러 신분으로 옷을 갈아입었고, 전장은 언제든 심문실로, 또 실낱 같은 희망을 찾아가는 마을로 바뀌었다.

모니카 김 교수의 ‘심문실의 한국전쟁’은 내전의 음지, 포로 심문실과 옥중 풍경에서 한국전쟁의 민낯을 탐구한다. 부드러운 서사 속에, 방첩대와 미군의 시선, 공산주의자와 의용군, 그리고 인민군의 이력은 낯선 불안과 두려움 속 기억의 방에 모여든다. 거제도 유엔군 포로수용소, 미군 심문 기록 등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저자는 냉전 이분법 너머에서 식민주의와 주권, 인정의 문제를 더 본질적 의제로 끌어올린다. 서울대생 오세희의 사연은 그 복잡성의 실감나는 상징이다. 네 장의 서로 다른 신분증과 함께 안전을 찾아 헤매던 한 사람의 평범한 선택들은 전쟁의 무자비함과, 아무도 영웅이 될 수 없던 시대의 잔혹한 면모를 웅변한다.
박찬승 한양대 교수의 ‘마을로 간 한국전쟁’ 역시 전쟁의 거대한 서사에서 벗어나 마을 단위로 시선을 내린다. 장삼이사가 겪은 삶의 결들, 다시 쓰인 갈등의 민낯 속에, 한국사회 내부에 잠재된 뿌리 깊은 분열의 구조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완도, 해남 등 새로운 지역들의 미시사가 보강된 개정 증보판에서 저자는 피난과 생존, 적과 아군의 경계가 흐릿해진 일상의 균열을 포착한다. 이름 없이 흩어진 마을 주민들과 남로당원이었던 이, 무고한 피란민들이 만들어간 이야기는, 결국 오늘의 한국전쟁 기억을 직접적으로 이끌어내는 출발선이 된다.
모니카 김은 ‘심문실의 한국전쟁’으로 2022년 맥아더펠로십, 2021년 제임스팔레상 등 유수의 상을 받았으며, 박찬승 교수의 저작 역시 한국출판문화상과 단재상 수상 등 많은 주목을 받았다. 두 학자의 해석은 한국전쟁 서사의 확장, 사회 갈등과 화해의 시작점에 대한 의미 있는 토론을 촉발한다. 정치권과 학계 안팎에선 “냉전 논리만으로는 이면을 해명할 수 없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으며, 사회적 공감대 확산 속에 분단 시대 민간 경험을 조명하는 움직임이 더욱 가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