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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길 따라 바람을 걷다”…화북포구문화제서 제주 정체성 재발견

조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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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주 골목을 걷다 보면, 옛 마을의 숨결을 다시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예전엔 관광지의 한 장면쯤으로만 흘려보냈던 포구의 풍경이, 지금은 제주의 뿌리를 품은 문화제의 무대로 거듭나고 있다. 9월 마지막 주말, 제주시 화북동의 화북포구에선 이곳만의 시간을 새긴 페스티벌 ‘화북포구문화제’가 열린다.

 

포구의 바람을 따라 걷다 보면 목사행렬 길트기 퍼레이드가 장엄하게 시작된다. 누군가는 조용히 뒤따르고, 누군가는 흙길을 밝게 누비며 지난 세월의 자리 곳곳을 체험한다. SNS에선 플로깅에 참여한 사진이나, 뮤지컬 ‘배비장전’ 인증샷이 연이어 올라온다. “이번에는 가족끼리 보트도 타보고, 고망낚시도 직접 해봤다”는 후기도 잇따른다. 말 그대로 축제의 한가운데서 생활과 추억이 엮여간다.

목사행렬 길트기부터 예술공연까지…‘화북포구문화제’ 제주 화북동에서 열린다
목사행렬 길트기부터 예술공연까지…‘화북포구문화제’ 제주 화북동에서 열린다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최근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지역축제 영향력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참가자 중 68%가 “지역의 고유한 경험이 일상에 신선한 영향을 줬다”고 답했다. 이번 문화제 역시 주민 중심으로 꾸려졌다는 점, 그리고 플리마켓·체험부스 등 세대별로 즐길 거리가 다양하다는 점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지역 문화활동가 이연수 씨는 “화북포구문화제의 본질은 ‘사라져 가는 것을 붙잡을 용기’라고 생각한다”고 표현했다. 그는 “과거와 현재의 삶이 맞닿은 자리에서 어른, 아이 모두가 조금씩 제주 원래의 리듬을 느끼게 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현장을 찾은 방문객들은 “예전 골목 사진을 보며 부모님의 추억을 들었다”, “수공예품이나 지역 먹거리에서 섬 고유의 손길이 느껴졌다”고 마음을 전했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제주는 늘 새롭지만, 이렇게 옛길 따라 걷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지역 주민들과 한데 어울리니 한때 제주살이의 꿈이 다시 떠올랐다”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화북포구문화제, 다음에도 꼭 다시 가야지”라며 오랜만에 가족과 주변 이웃이 가까워졌다는 이야기들도 남겨졌다.

 

사소한 풍경, 작은 축제이지만 그 안엔 시간을 지키는 마음과 새로운 연대가 자란다. 화북포구문화제는 단지 일회성 행사가 아닌, 제주의 뿌리를 삶의 리듬으로 펼치는 한 장면이 되고 있다. 축제가 끝나도, 바람이 머문 포구의 기억은 오랜 위로로 남을 것이다.

조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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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북포구문화제#화북동#목사행렬길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