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성유전 리프로그래밍”…글로벌 바이오, 역노화 기술 선점 경쟁
후성유전 리프로그래밍 기술이 바이오·제약 산업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바이오테크 스타트업과 글로벌 제약사는 세포의 생물학적 시계를 되돌려 노화를 지연하거나 조직을 회춘시키는 역노화 기술의 개발을 앞다퉈 추진 중이다. 업계에서는 이 기술이 ‘노화 치료’라는 새로운 시장의 생성과 의학 패러다임 전환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후성유전적 리프로그래밍은 세포의 후성유전적 서명을 초기 상태로 되돌려 젊고 건강한 기능을 회복시키는 기술이다. 완전 리프로그래밍은 유도만능줄기세포(iPSC)로의 변환에 초점을 두고, 부분적 리프로그래밍 전략은 원래의 조직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세포 노화 현상을 제외시키는 데 중점을 둔다.

이 기술의 핵심은 ‘야마나카 인자’로 불리는 특정 전사인자(Oct4, Sox2, Klf4, cMyc)를 세포에 발현시켜 후성유전 프로그램을 리셋한다는 점이다. 기존에 노화로 손상된 조직의 복원이 어려웠던 한계를 뛰어넘어, 실제 설치류의 시력 손실이 역전되는 등 전임상 단계에서 유의미한 회춘 효과가 다수 밝혀졌다. 최근 추가적으로 Lin28, Nanog 같은 인자가 동원돼 인간 내피세포의 생물학적 나이가 5년 가량 젊어지는 결과도 도출됐다.
시장에서는 후성유전적 리프로그래밍이 노화 방지, 만성질환 치료, 조직 재생 및 장기이식 분야에서 획기적인 의료 수요를 창출할 것으로 본다. BioStar, Genflow Bioscience, clock.bio 등 바이오테크 스타트업은 자금 유치를 확대하며 기술 실증과 임상 진입을 추진 중이다. 실제 clock.bio는 최근 530만 달러를 유치해 ‘회춘 인자 지도’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Genflow Bioscience는 노령견을 대상으로 한 수명 연장 임상시험을 올해 말까지 발표할 예정이다.
글로벌 경쟁 역시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 Altos Labs는 비가역적 유전자 조작 없이도 후성유전 재프로그래밍을 수행하는 신약 개발에 나섰고, Life Biosciences와 Rejuvenate Bio는 녹내장, 노화성 질환 등을 대상으로 한 부분적 리프로그래밍 기반 유전자 치료 실증에 성공했다. 시력 회복, 생쥐 수명 연장 등 구체적 성과도 속속 공개되고 있다.
각국 정부와 연구기관의 R&D 지원도 경쟁적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국내에서는 카이스트, 서울대, 포스텍 등 주요 기관이 후성유전학 기반 노화 기전 규명과 회춘 기술 개발에 연구력을 집중하고 있으며, 정부 차원에서는 ‘K-바이오·백신 산업 전략’에 따라 항노화·재생의료를 미래 유망 분야로 선정, 범부처 연구개발 투자와 규제 개선책을 본격 추진 중이다.
후성유전 리프로그래밍 기반 역노화 기술은 데이터 축적에 따라 안정성·윤리성 검증, 신약 개발의 규제 정책 등 해소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핵심 플랫폼의 상용화 시점이 곧 의료산업 전환의 분기점이 될 것으로 진단한다. “산업계는 이 기술이 실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