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고분에서 카페거리까지”…경주, 신라의 기억과 감성의 산책
여행지를 고르는 기준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유명 유적지가 전부였다면, 이제는 그곳의 공기와 감성이 여행의 이유가 되곤 한다. 경주 역시 그렇다. 예전엔 신라 천 년의 도시로만 알려졌지만, 지금은 ‘과거와 현재를 나란히 걷는 곳’으로 모든 세대의 여행자가 찾는 일상이 됐다.
요즘 경주를 찾는 이들은 대릉원 산책을 시작으로 황리단길에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신라 시대 무덤이 모여 있는 대릉원은 천마총 내부 관람은 물론, 나무 사이로 햇살이 쏟아지는 고요한 산책로로도 사랑받는다. SNS에는 “춘분에도, 초여름 밤에도 대릉원 돌담 따라 걷고 있다”는 인증이 쏟아진다. 돌담을 따라 꽃이 필 때면, 고분 앞에서 오래된 시간을 느끼는 여행자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대릉원 인근의 황리단길은 한옥을 개조한 작고 감각적인 카페로 가득하다. 길목마다 옛 소품 가게, 아지트 같은 서점, 전통차를 내는 찻집이 이어지며, 부모와 자녀가 함께 걷거나 친구들끼리 사진을 남기는 풍경이 일상이 됐다. 젊은층은 “경주는 힙하다”고 표현하고, 중년 여행객은 “고향 같은 편안함에 새로움이 묻어난다”며 경주의 이중 매력을 느꼈다.
이런 변화는 데이터로도 확인된다. 경주시 관광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황리단길 방문객이 20~30대에서 50대 이상까지 고르게 증가했다. 동궁과 월지, 첨성대, 월정교 등 고대 유산 곳곳에서 ‘야경 산책’ 트렌드가 번지고 있으며, 밤이 되면 조명에 비친 고목과 연못, 목조 다리를 배경으로 가족·커플 사진 인증이 퍼지고 있다.
현지 여행업계는 “지금 경주는 단지 옛 유적지의 그림자가 아니다. 시간의 결이 쌓인 곳에서 현대의 감성이 자연스럽게 어울린다”고 전했다. 심리학자들도 “고대의 공간을 걷고 현대의 거리를 즐기는 여정 자체가, 일상에 쌓인 피로를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만큼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 풍경은 머무는 이들의 마음까지 환기시키는 셈이다.
커뮤니티 반응도 흥미롭다. “대릉원 돌담 아래를 함께 걷는 시간이 내겐 최고의 여행이었다”, “황리단길 카페에서 마신 찻잔 하나에도 시간이 머문다”는 이야기가 많다. 야경 명소인 월정교와 석굴암, 불국사까지, 계절과 상관없이 ‘시간의 흐름을 느끼며 걷는’ 여행의 가치를 찾는 이가 점점 늘고 있다.
경주는 신라 유산의 자부심뿐 아니라, 현대적 감각과 여유가 녹아든 감성 여행지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작고 느린 걷기, 삶의 리듬을 바꾸는 시간 여행이 경주에서 시작되고 있다. 지금 이 변화는 누구나 겪고 있는 ‘나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