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남침 후 10초 만에 참전 결심”…트루먼 손자, 조부 결단 강조
정치적 결단의 순간, 해리 S.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의 손자 클립튼 트루먼 대니얼 씨가 주목받았다. 한국전쟁의 참전 결정을 둘러싼 트루먼 대통령의 선택이 10초 이내에 이루어졌다고 직접 전하면서, 전후 동맹의 가치와 역사적 책임이 다시금 화두로 부상했다.
25일(현지시간) 워싱턴 DC 인근 호텔에서 노근리국제평화재단이 개최한 글로벌평화포럼에 참석한 대니얼 씨는 할아버지 트루먼 대통령이 1950년 6월 24일 자택에서 북한 남침 소식을 듣고 “10초도 채 걸리지 않아 참전을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트루먼 대통령은 애치슨 국무장관의 전화를 받은 뒤 주저하지 않고 결단했다”고 덧붙였다.

트루먼 대통령이 ‘애치슨 라인’에서 한반도를 제외했다는 비판이 따라왔지만, 남침 직후에는 곧바로 개입을 선택했다는 해명이다. 대니얼 씨는 “조부는 자유인들에 대한 지배 시도나 외부 압력에 저항하는 것을 미국의 정책이라고 자주 밝혔다”고도 설명했다.
특히, 한국전 참전이 트루먼 대통령 개인의 정치적 위기로 이어졌던 배경도 언급됐다. 대니얼 씨는 “미국 사회는 2차대전의 피로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고, 국지적 개입의 목표와 대가에도 의문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트루먼의 결정에 대해 박수를 보내면서도 많은 이들이 ‘치러야 할 대가’를 우려했다는 해석이다.
전쟁 확전에 대한 미국 내부의 의견 차이도 소개됐다. “특히 더글러스 맥아더 사령관이 소리 높여 확전을 지지했고, 많은 이들은 빠른 승리를 위해 핵무기 사용까지 선호하는 분위기도 있었다”고 전했다. 반면, 트루먼 대통령은 1951년 맥아더 사령관 해임 등 unpopular한 결단도 내렸고, 대통령 지지율이 사상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고 밝혔다.
대니얼 씨는 “한국은 6·25전쟁에서 희생된 양국과 유엔군의 헌신을 잊지 않고, 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역사적 사명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군과 미군, 그리고 유엔군의 고귀한 희생은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 역시 이 미완의 과업에 계속 헌신할 것이라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언론인 및 작가로 활동해온 클립튼 트루먼 대니얼 씨는 1995년 트루먼 대통령 회고록을 출간하는 등 조부의 업적 조명에 힘써왔다. 그는 조부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핵투하를 결정했음에도, 본인은 핵무기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트루먼 대통령의 결단이 한미동맹의 첫 단초였다는 점에서 이번 발언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전쟁 75주년을 맞아, 정부와 각계는 참전국 희생을 기리는 한편, 평화와 역사적 책임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