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강제이주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국가 책무”…정영순, 인권·역사 책임 촉구
고려인 강제이주 역사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둘러싸고, 역사적 책임과 인권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증폭되고 있다. 고려인협회와 국제기록유산센터,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등은 지난 15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계기로 고려인 디아스포라 기록의 국제적 등재 사업을 공식 추진한다고 밝혔다. 정영순 대한고려인협회장은 22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고려인 디아스포라 기록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대한민국의 역사적 책무다. 과거를 존중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각오로 국민과 국제사회의 동참을 요청한다”고 강조했다.
프로젝트는 고려인협회, 유네스코 산하 국제기록유산센터(ICDH),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가 함께 진행하며, 2027년 등재를 목표로 한다. 정영순 회장은 “ICDH의 우즈베키스탄 ‘실크로드 프로젝트’ 과정에서 고려인 디아스포라 기록의 중요성이 확인됐다”며 “작년 말부터 협의를 이어오며 흩어진 자료를 인류 공동의 기억으로 정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러시아 이르쿠츠크에서 태어난 사할린 동포 3세로, 다양한 국가에서 교육 및 연구 경력을 쌓고 2020년 8월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지난해 대한고려인협회장으로 선출된 후 인천대학교 초빙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정영순 회장은 “고려인들은 1937년 소련 정부의 정책으로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17만여 명으로, 언어와 권리가 단절된 상황에서도 농업, 과학,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성취를 거뒀다”고 밝혔다. 그는 “이 기록은 고통의 역사가 아니라 인간 존엄과 공동체 정신의 증거”라며,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침묵했던 역사를 알리고, 디아스포라와 소수자의 권리를 지지할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고려인 강제이주사가 단순한 이민자 성공 서사가 아니라, 국가폭력 하에서 존엄을 지킨 민족의 기록임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억압과 상실 속에서도 인간 존엄을 지켰다는 희망, 역사를 잊으면 비극이 반복된다는 경고, 그리고 소수자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일이 인류의 기억을 풍요롭게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한 사료 정리가 아니라 인권과 정의의 실천”이라 정의하고, 과거의 상처를 복원하고 침묵 속 목소리를 세계에 알리는 연대의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대한민국 내 고려인 공동체 역시 법적·문화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이번 사업이 이들을 한국 역사와 공동체의 일부로 정착시키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자녀 세대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는 첫 걸음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밝혔다.
정 회장은 한국 사회에 “고려인 역사는 분단, 이산, 이주로 이어져 한국 정체성과 맞닿아 있다”며, “이 프로젝트가 다양한 기억을 포용하는 민주적 성숙의 기회이자, 보다 포용적인 공동체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나아가 국제사회적 차원에서도 “한국의 디지털 기술과 문화외교 역량이 인류 보편 가치 실현에 기여하는 실례가 될 것”이라며, “대한민국의 포용적 공동체 지향을 세계에 알리고 도덕적 리더십을 보여줄 기회”라고 강조했다.
국회와 정치권은 고려인 강제이주 기록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문제와 관련해 치유, 정체성 회복, 역사적 책임 인식 방안 등을 두고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사회 각계의 지지와 정책적 지원이 향후 등재 추진의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정부는 기록물 정리와 국제적 협력 확대 방안을 적극 검토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