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사진도 블러 처리”…구글, 국내 지도 반출 실마리 찾나
구글이 한국 정부의 지도 데이터 반출 허용 여부 결정을 앞두고, 보안시설 등 민감 정보를 블러(가림) 처리한 국내 위성사진을 구매하는 방안을 공식적으로 검토했다. 구글 대외협력 정책 부문 최고 책임자인 크리스 터너 부사장은 5일 구글코리아 블로그를 통해 “필요하다면 국내 파트너사로부터 이미 가림(블러) 처리된 위성 이미지를 구매해 활용하는 방법도 정부와 협의 중”이라며 기존의 ‘글로벌 일괄 정책’ 원칙에서 한 발 후퇴한 입장을 내비쳤다. IT업계와 안보 담당 부처는 이번 결정이 지도 반출 정책의 분기점이 될지 주목하고 있다.
국내 지도 데이터의 해외 반출은 안보와 산업 간 균형을 둘러싸고 오랜 논쟁을 낳아 왔다. 정부는 이번 구글 지도, 구글 어스 등 글로벌 플랫폼에 노출된 국가 보안시설의 위치와 형태를 완전히 가릴 것을 필수 조건으로 내세워 왔다. 기존에는 구글이 미국 내 군사시설, 백악관, 청와대, 주한미군 기지 등 전 세계 보안시설 이미지를 별도 가림 없이 서비스하는 글로벌 원칙을 고수해 왔다. 하지만 보안 우려 목소리가 이어지며, 구글이 한국 정부 요청에 따라 직접 블러 처리 및 기술적 대응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것은 정책 변화로 해석된다.

기술적으로 구글은 보안시설 좌표 정보를 정부로부터 제공받아야 위성사진 편집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한 외국 IT기업에 군사·국가시설의 좌표 수천 건을 일괄로 전달해야 하는 점은 오히려 보안 위험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터너 부사장은 “구글 지도용 위성 사진은 외부 민간 업체가 제공하고, 원본 이미지는 오픈 마켓에 노출돼 있다”며 “실제 가림 처리는 구글 서비스에서만 적용돼도, 외부 원본 소스에는 여전히 정보가 남아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지도 반출 문제의 핵심 쟁점은 데이터 축척 기준과 시장 활용성이다. 구글은 지난 2월, ‘고정밀 국가기본도(1:5000 축척 수치지형도)’에 한해 국외 반출을 신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구글측은 “1:5000 지도는 국내 내비게이션, 업계 표준이고 해외에서 보행자·자전거 경로 안내에도 쓰이는 축척이나, 학계·산업 기준상 고정밀 지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반면 정부는 더욱 세밀한 범위의 지도 반출이 국가 안보상 위험요소라고 해석하고 있다.
특히 이번 구글의 입장 발표는 공식 채널을 통한 첫 메시지로, 지도 데이터 국제 반출 논란의 새로운 국면을 가져올 전망이다. 구글은 기존에 반출 가능한 1:25000 축척 지도만으로는 “밀집지역 길찾기, 골목 안내 등 정밀한 내비게이션 서비스 제공이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며 반출 승인을 촉구했다.
글로벌 지도 플랫폼 경쟁은 이미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미국 전역은 민간 지도 서비스의 고정밀 데이터 공개가 일반적이나, 일본, 중국처럼 일부 국가는 군사·안보시설은 아예 비공개로 일관하고 있다. 한국 정부와 국토지리정보원은 조만간 관계 기관 회의를 열어 데이터 반출 심의 및 기한 연장 등 세부 방안을 조정할 계획이다. 업계는 이달 중순 열릴 한미정상회담에서 지도 데이터 안보 문제까지 테이블에 오를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데이터 반출 허용 여부가 첨단 내비게이션, 자율주행, 신산업 플랫폼 경쟁력과도 직결된다고 분석한다. 기술 검증 외에도 국가 안보와 정보주권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정책적 해법 필요성이 강조된다. 산업계는 지도 데이터 공개가 실제 국내외 서비스 산업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