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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 거포의 전설”…장윤창, 남자배구 이끈 스파이커→지병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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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 거포의 전설”…장윤창, 남자배구 이끈 스파이커→지병 별세

강다은 기자
입력

하늘을 가르는 왼손 공격 한 방으로 코트를 지배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많은 후배와 동료의 기억 속에서 장윤창은 남자배구 황금기를 상징하는 이름이었다. 그의 별세 소식에 배구계는 깊은 슬픔과 함께, 한 시대의 막을 내렸음을 실감하고 있다.

 

왕년의 명스파이커 장윤창 경기대학교 스포츠과학부 교수가 30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65세다. 1978년 인창고 2학년이던 시절, 만 17세로 최연소 남자 배구 국가대표에 발탁된 장윤창은 역동적인 왼손 공격으로 한국 남자배구의 패러다임을 바꿔 놓았다.

“왼손 거포의 전설”…장윤창, 남자배구 이끈 스파이커→지병 별세 / 연합뉴스
“왼손 거포의 전설”…장윤창, 남자배구 이끈 스파이커→지병 별세 / 연합뉴스

같은 해 세계선수권대회 4강 진출과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금메달,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은메달 등 국제 무대에서의 잇단 쾌거는 그의 시대를 증명했다. 1983년에는 고려증권 창단 멤버로 실업 배구의 중심에 섰고, 현대자동차써비스와의 경쟁 속에서 배구 열기를 부채질했다.

 

장윤창은 대통령배 원년 인기 선수상을 시작으로 최우수선수, MVP, 그리고 고려증권 초대 챔피언부터 최다 6회 우승까지, 팀과 개인 부문의 굵직한 기록들을 써 내려갔다. 한국 남자배구 최초로 ‘스카이 서브’를 구사하고, 활처럼 휘는 허리와 돌고래라는 애칭까지 당시 배구팬들에게 커다란 울림을 남겼다.

 

은퇴 후 장윤창은 미국으로 건너가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귀국 후에는 모교에서 교수로 후진 양성에 매진했다. 대한민국 스포츠국가대표선수회 회장, 대한배구협회 강화이사 등 행정가로서의 삶도 놓치지 않았다. 치열한 승부의 현장을 떠난 뒤에도, 연구와 교육을 통해 배구 발전에 헌신했다.

 

박주점 한국배구연맹 경기위원장은 "1980년대 남자배구를 대표하는 최고의 스타였다"며 "작년 말 위암 말기 진단을 받고도 끝까지 버텼다"고 전하며 아쉬움을 더했다. 배구 팬들과 제자들은 SNS,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남자배구 시절의 영웅을 기억한다", "명복을 빈다"라며 애도 물결을 이어가고 있다.

 

장윤창의 빈소는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마련돼 있다. 발인은 6월 1일 오전 5시 30분에 진행된다. 한국 남자배구의 한 시대를 밝혔던 레전드의 마지막 길에, 코트를 가르던 그의 왼손처럼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이 이어지고 있다.

강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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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창#남자배구#경기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