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명 위한 유전자 치료제”…서울대, 초정밀 희귀질환 도전이 여는 미래
한 명의 극희귀 유전자 환자를 위한 맞춤형 치료제 연구가 국내에서도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서울대병원 임상유전체의학과 채종희 교수(희귀질환센터장)는 최근 국내 연구진과 협력해 'N-of-1 trial' 즉 한 명의 희귀질환 환자를 위한 초정밀 유전자 맞춤 치료제 개발에 나섰다. 자신이 어린 시절 마주한 척수성 근위축증(SMA) 환아의 죽음에서 비롯된 소명의식이, 혁신적 연구 도전의 밑바탕이 됐다. 임상유전체·소아청소년 질환 전문의이자 국내 SMA 유전자 치료제 도입 사례의 주역인 채 교수는 “치료제 개발이 실패해도 얻은 지식이 전체 의료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업계는 이번 시도를 ‘개별유전질환 정복 경쟁의 전환점’으로 보고 있다.
이번 연구는 환자 맞춤형(N-of-1) 유전자 치료제 설계부터 시작한다.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시퀀싱)으로 특정 변이를 규명하고, 교정이 가능한 희귀질환 환아를 선별해 치료제 후보를 도출한다. 이어 분자 맞춤 설계, 약물 기능 복구 실험 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 임상 효과를 관찰하는 ‘초정밀 의학’에 해당한다. 기존의 대규모 임상시험과 달리, 개별 희귀환자군의 유전적 특성까지 직접 겨냥할 수 있다는 점이 기술적 차별점으로 꼽힌다.

구체적으로 임상유전체 진단 기술의 발달로 진단률은 높아졌으나, 여전히 전체 희귀질환 7000~8000종 중 상당수 환자가 원인조차 모른 채 진단 여정을 반복하고 있다. 국내 환자 감소와 수익성 한계 등으로 희귀질환 신약 개발은 투자 부담이 크다. 하지만 채종희 교수는 “연구가 실패해도, 그 과정에서 축적한 진단·치료 기술이 흔한 질환에도 환류되는 구조”라 설명한다. 일례로 SMA 치료제 ‘졸겐스마’의 국내 최초 투여, ‘스핀라자’ 글로벌 임상 참여 경험이 이런 의료 플랫폼 전환을 뒷받침했다.
특히 이번 연구 플랫폼은 기존 신약개발 방식의 시간·비용 장벽을 극적으로 낮추고, 결과적으로 보다 많은 환자에게 진단·치료 기회를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는 평가다. N-of-1 임상은 아직 규제와 보험 적용, 윤리 문제 등 풀어야 할 난제도 많다. 특히 신생아 유전자 선별검사의 확대는 치료 가능 질환에 국한해 안전성·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며, 국가별 의료 환경과 인종·윤리 특성이 다르기에 맞춤 접근이 중요하다는 지적 역시 이어진다.
글로벌에서는 미국·유럽 주요 병원과 연구기관들이 개별 희귀유전질환 환자를 위한 맞춤 치료 개발을 실제 임상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임상 성공률은 낮으나 데이터와 기술 자산이 쌓이면서 전체 유전질환 치료의 미충족 수요 해소에 기여하는 흐름이 감지된다. 채 교수는 “각 진단 실패와 약물 개발 실패도 새로운 지식이 돼 더 많은 환자에게 혜택을 돌려준다”고 설명한다.
희귀질환 임상·연구 인력 집중, 신생아 선별검사 확대, 의료윤리와 제도 개선 등 과제 역시 한꺼번에 논의되고 있다. 채 교수는 “희귀질환 치료는 소수만의 일이 아니라 전체 의료 시스템 혁신의 동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산업계는 높은 기술 장벽과 투자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초정밀 맞춤 치료제 생태계가 한국 의료기술 경쟁력의 분기점이 될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