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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 논의 없이는 북미 회담 불가”…김정은, 트럼프 의식 속 ‘미국과 대화 조건’ 천명
정치

“비핵화 논의 없이는 북미 회담 불가”…김정은, 트럼프 의식 속 ‘미국과 대화 조건’ 천명

한채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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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비핵화 문제를 둘러싸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대미 강경 메시지와 함께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의 개인적 신뢰를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최고인민회의 계기 북한 최고지도부의 입장 변화 가능성이 관찰되지만, 비핵화 거부 입장은 이번에도 확고히 확인됐다. 한미의 압박과 협상 모두에 맞서며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새로운 절연 기조를 분명히 한 점에서 파장이 예상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1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3차 회의 연설에서 “나는 아직도 개인적으로는 현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며 “만약 미국이 허황한 비핵화 집념을 털어버리고 현실을 인정한 데 기초해 우리와의 진정한 평화 공존을 바란다면 우리도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비핵화라는 미국의 정책 기조 포기를 ‘회담 성립 전제’로 제시한 것이다.

이어 김 위원장은 “비핵화라는 것은 절대로,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하며 핵보유 입장을 다시 확인했다. 그는 또 “핵을 포기시키고 무장해제시킨 다음 미국이 무슨 일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세상이 이미 잘 알고 있다”며,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불신을 강하게 드러냈다. 한편, “제재 풀기에 집착해 적수국들과 그 무엇을 맞바꾸는 것과 같은 협상 따위는 없을 것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이라며 대외 협상 가능성을 선을 그었다.

 

미국과의 힘겨루기와 장기전을 시사하는 언급도 나왔다. 김 위원장은 “제재나 힘의 시위로써 우리를 압박하고 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고 주장했고, “시간은 우리 편”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김정은 위원장은 “마주앉을 일이 없으며 그 무엇도 함께 하지 않을 것”이라며 “일체 상대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다”고 했다. 그는 “대한민국은 모든 분야가 미국화된 반신불수의 기형체, 식민지 속국이며 철저히 이질화된 타국”이라고 언급, 기존의 적대적 두 국가론을 반복했다. 통일정책 관련해서는 “결단코 통일은 불필요하다. 어느 하나가 없어지지 않으면 안 될 통일을 우리가 왜 하겠느냐”며 명확한 불가 방침을 밝혔다.

 

정부의 ‘중단-축소-비핵화 3단계 비핵화론’에 대해서도 “전임자들의 숙제장에서 옮겨 베껴온 복사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그는 “우리와 한국이 국경을 사이에 둔 이질적이며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두 개 국가임을 국법으로 고착시킬 것”이라고 추가 설명해 현행 헌법에 적대적 국가론 명시 의도를 재확인했다.

 

이번 회의에선 양곡관리법, 지적소유권법, 도시경영법이 심의 채택됐으며, 러시아 쿠르스크주 파병 참전자와 그 가족을 위한 국가 차원의 지원조치도 공개됐다. 김 위원장은 “비밀병기”를 새로 보유했으며 “국방과학 연구성과도 적지 않게 이룩”했다고 밝혔으나 구체적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의 이번 연설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치적 복귀 움직임, 미국 대선 일정과 맞물린 북미관계 재편 신호로 해석한다. 그러나 북한 핵포기 거부라는 입장과 함께 남북 간 완전한 절연을 시사했다는 점에서 한미 양국의 외교·안보 전략에 큰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미국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대북정책 수위를 조율하는 가운데 북한과의 직접 대화 가능성도 새로운 분수령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와 정부는 북한의 연이은 강경 메시지에 대응해 대북 공조 강화 등 추가 대책 논의에 나설 계획이다.

한채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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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트럼프#비핵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