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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혜란, 봉준호·박찬욱 품에서 흐른 격정”…살인의 추억→어쩔 수가 없다→진심건넨 순간→속내 궁금증

문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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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눈빛으로 인터뷰장에 들어선 염혜란의 주변에는 묘한 긴장과 설렘이 떠다녔다. 영화 ‘어쩔 수가 없다’에서 이아라 역을 맡은 염혜란은 삶의 무게와 성취 사이에서 흔들리는 감정의 결을 진솔하게 풀어냈다. 연기 인생의 결정적 전환점을 맞은 순간, 그녀는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두 감독의 세계와 마주한 감상을 차분히 전했다.

 

‘어쩔 수가 없다’는 모든 것을 이뤘다고 믿었던 회사원 유만수가 예기치 못한 해고로 인해 재취업이라는 전쟁을 시작하며 가족과 집, 그리고 스스로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사투를 그린 작품이다. 이병헌,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차승원, 유연석 등 쟁쟁한 배우들이 어우러진 이 영화에서 염혜란은 남다른 존재감으로 극에 온기를 더했다.

에이스팩토리 제공
에이스팩토리 제공

특히 염혜란이 참여한 ‘어쩔 수가 없다’는 해외 선판매만으로 순제작비를 넘어섰다. 박찬욱 감독의 작품 중 역대 최고 제작비를 기록하며 제50회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서의 첫 공개와 국제 관객상 수상, 그리고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 장편 부문 한국 대표 선정이라는 이정표도 세웠다. 부산국제영화제의 뜨거운 야외 오픈 토크 현장에서 염혜란은 감독과 배우들과의 선 굵은 교감을 나눴다.

 

베니스 국제영화제도 그녀에겐 여전히 잊지 못할 기억이었다. 염혜란은 낯선 해외 무대에 서는 일에 긴장감을 숨기지 못했다며, 관객의 환호와 응원이 큰 위로와 자극이 됐다고 고백했다. “영어 공부를 시작해야겠다, 언젠가 외국 작품에도 이름을 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며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

 

최근 대중이 보내는 큰 인기에도 염혜란은 잠시 숨을 고른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 무대인사 현장에서 처음 느낀 관객들의 변화, 그리고 시상식에서 더 이상 익명으로 남지 않는 이름의 무게가 이제는 달콤함과 동시에 두려움으로 다가온다고 털어놨다. 천천히, 오래도록 사랑받고 싶다는 바람에는 배우로서의 진정성과 진심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속았수다’에서 전광례 역을 맡았을 때는 자신의 변신이 관객에게 닿을 수 있을지 떨리는 마음이 컸다고 돌아봤다. 강렬한 모성 캐릭터를 위해 광고 출연까지 망설인 단호함, 그 이후로도 배역에 따라 삶이 달라지는 과정을 솔직히 나눴다. 이제는 역할의 자유로움을 기다리며, “이아라라면 광고를 신나게 찍고 주변에 자랑할 것 같다”며 웃음 섞인 소회를 덧붙였다.

 

2003년 영화 ‘살인의 추억’ 단역 시절도 떠올렸다. 당시 송강호조차 알아보지 못했던 신인 배우였던 자신을, 봉준호 감독이 제대로 이름을 불러줬다는 일화에서 염혜란의 겸손과 감사가 묻어났다. 작은 대사 한 마디, 화투놀이 한 장면이 감독의 손끝에서 전 부치는 소소한 일상으로 바뀌며 영화 속에 퍼진 깊이 또한 각별했다.

 

박찬욱 감독과 봉준호 감독의 공통점에 대한 답에는 두 예술가 모두 상대를 존중하며 끝없는 소통을 펼친다는 이야기가 담겼다. 같은 시대, 같은 현장에서 호흡한 벅찬 감동과 상호 존경의 마음을 담아낸 답변에서 염혜란만의 연기가 가진 힘이 다시 한 번 드러났다.

 

모든 변곡점의 순간마다 염혜란은 “속도가 빨라서 걱정된다, 천천히 오래가고 싶다”는 바람을 남겼다. ‘어쩔 수가 없다’의 깊은 울림은 물론, 배우로서 염혜란이 그리고자 하는 인생의 곡선 역시 관객들에게 따뜻한 여운을 전한다.  

영화 ‘어쩔 수가 없다’는 전국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문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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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혜란#어쩔수가없다#봉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