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여정, 슬픔의 품격”…김진유 감독, 세 사람의 온기→이별 뒤에 남는 위로
오랜 집을 떠나는 춘희와 그녀가 남긴 피아노, 그리고 그 곁에 자연스레 스며드는 지휘자 민준과 소년 성찬. 김진유 감독의 영화 ‘흐르는 여정’은 이토록 다정한 순간들을 포근하게 아우르며 관객을 길고 정갈한 감정의 강물 위에 띄운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KBS독립영화상 수상의 영예를 안은 이 작품은 각자 잃어버린 무언가를 품은 세 인물이 조심스레 서로의 곁에 머무는 모습을 통해 상실과 우정, 그리고 말없이 건네지는 위로의 의미를 한층 깊게 새긴다.
‘흐르는 여정’은 남편의 부재와 집을 떠나야 하는 춘희가 이웃에게 피아노를 맡기며 하루하루 다른 이와 어울리는 변화의 과정을 담았으며, 서로 이질적인 삶을 살아온 민준, 성찬과의 만남을 통해 작지만 단단한 유대가 어떻게 탄생하는지를 은은하게 조명했다. 영화의 카메라는 마지막 순간까지 품위를 잃지 않는 시선으로 인물의 쓸쓸함과 서로를 돌보는 손길을 따라가며, 긴 여운을 남긴다.

심사위원단은 ‘오랜만에 마주하는 우아한 세계’라 평하며, 영화가 전하는 ‘좋은 삶’과 ‘좋은 죽음’에 대한 고민, 조용한 카메라의 태도가 지금의 현실에도 깊은 울림을 더한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김혜옥이 연기한 춘희의 단단한 얼굴과 저스틴민, 박대호, 공민정이 그리는 진솔한 감정이 작품을 더욱 따뜻하게 감싼다. 이 같은 연기와 연출은 관객이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누구나 한번쯤 마주할 상실의 순간을 더욱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김진유 감독은 ‘나는 보리’에 이은 두 번째 장편 연출작으로, 가족 그리고 삶과 죽음을 아름다움으로 환원하는 특유의 시선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정동진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서 쌓아온 영화적 내공과 심사위원 만장의 선택이 만난 결과로, ‘흐르는 여정’은 독립영화만이 전할 수 있는 깊은 울림을 남겼다.
부산국제영화제 30주년을 맞은 올 해, KBS는 신진 감독들과 독립영화계에 의미 있는 지원을 이어갈 계획이다. 이번 수상작 ‘흐르는 여정’은 KBS 1TV 독립영화관을 통해 극장 밖 시청자들과도 조우할 예정이며, 진심을 담은 영상이 또 한 번 새로운 인연을 이어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