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호 기술 민간 이양”…한화에어로, 독자 로켓 개발 본격화
한국 우주발사체 산업의 새로운 국면이 열리고 있다. 정부 주도의 누리호 개발을 주도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누리호의 핵심 기술을 국내 민간기업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공식 이전함에 따라, 한국도 민간이 우주개발을 주도하는 ‘뉴스페이스’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번 기술 이전은 항공우주 연구기관이 국가 연구 성과를 민간에 이양하는 첫 사례로, 업계에서는 이를 우주산업 경쟁구도의 전환점이 될 신호탄으로 평가하고 있다.
누리호 개발 기술 이전 계약이 2024년 6월 25일 우주항공청 주도로 체결되면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약 2조원 상당이 투입된 누리호 개발 성과와 지식을 확보하게 됐다. 누리호는 1톤 이상의 위성 등을 저궤도(LEO)로 실어 나를 수 있는 세계 7번째 중·대형 발사체로, 우주개발 선진국들의 핵심 기준 중 하나로 꼽힌다. 항우연이 주관하며 진행된 1~3차 발사와 달리, 예정된 4~6차 발사(2024~2026년)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총괄 운영하게 된다. 기술이전 과정에서 지식재산권 관리, 기술 가치평가 등 여러 협상 문제가 제기됐으나, 우주항공청의 중재와 상호 협력으로 기술 이전이 완료됐다.

누리호 민간 이전은 단순한 운용권 넘김이 아닌, 발사체 설계·조립·발사 경험 데이터 등 체계적 기술 패키지 이전을 뜻한다. 이를 기반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앞으로 누리호의 고도화와 자체적 개량, 신규 발사체 개발 역량까지 단계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미국 스페이스X가 정부 기술이전을 바탕으로 독자 로켓(팰컨9)을 상업화하며 주도권을 거머쥐었듯,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역시 한국형 ‘뉴스페이스’ 모델로 도약할 기반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기술적으로 누리호는 강력한 엔진군(75톤급)과 3단 분리 로켓 시스템, 1톤급 이상 화물 실으키 등 세계적 수준의 ‘순수 국산’ 발사체다. 하지만 상업 발사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발사 비용 절감이 절대적 요건임이 드러났다. 현재 누리호는 1㎏당 발사 비용이 약 2만6000달러로, 스페이스X 팰컨9(1㎏당 2857달러)의 9배 이상이다. 이는 재사용(Reusable Launch System) 기술 여부에서 비롯된다. 미국 밴더들은 재사용 엔진과 1단 회수 시스템 등을 통해 경제성을 크게 끌어올렸으나, 누리호는 1회성 발사 방식에 머물러 있다.
실제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자체 ‘독자 로켓’ 시리즈 개발과 글로벌 상업 시장 진입을 목표로 한다면, 재사용 발사체(RLV) 도입이 기술적·경제적 과제가 될 전망이다. 우주항공청 역시 차세대 발사체 사업의 개발 목표를 기존 일회용에서 재사용형으로 수정 중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누리호는 연구·실험용에 가까워 글로벌 비즈니스 실전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는 현실적 평가가 나온다.
한국 민간 우주기업 중에서도 이노스페이스 등 소형 발사체 기업이 등장했으나, 1톤 이상 중·대형 탑재체 발사 경험은 아직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유일하다. 현재 항우연과 한화 사이 차세대 발사체 지식재산권 협상은 일시 중단됐으나,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재사용 발사체 기술까지 확보하면 민간 독자 모델의 상업화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스페이스X, 블루오리진, 유럽 아리안스페이스 등이 민간 중심 발사체 경쟁에 진입했고, 중국도 민간 기술기업의 상업 발사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추진 중이다. 미국과 유럽은 발사체 성능과 경제성 묶인 ‘뉴 스페이스’ 생태계를 정책적으로 지원하며 혁신 속도를 높이고 있다.
정부 차원의 적극 지원도 눈에 띈다. 우주청장은 “이번 민간 기술 이전은 한국 우주산업의 새로운 도약이며, 민·관 협력 기반 생태계 강화에 정책·재정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재사용 발사체 등 핵심 기술까지 내재화한다면, 한국 우주산업이 세계적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산업계는 이번 누리호 기술 이전으로 민간이 주도하는 우주 시장 전환이 성공적으로 안착할지 예의 주시하고 있다. 기술 개발 속도만큼이나, 산업구조와 정책·인증 체계 혁신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 동시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