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많은 경주, 산책로 걷다”…고즈넉한 문화유산 속 사색의 시간
요즘 경주를 걷는 사람이 늘었다. 예전에는 먼 역사 여행지로만 여겨졌던 이곳이, 이제는 온전히 일상을 쉬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다가온다. 22일 오전, 경주시는 23.9도의 선선한 기온과 구름 낀 하늘 아래 고요한 산책객들을 맞았다.
경상북도 남동쪽,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는 별명답게 경주는 도심 전체가 유적지다. 진지한 여행객부터 가족, 연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SNS에 ‘경주 인증샷’을 남긴다. 실제로 여행 플랫폼에선 “조용히 산책하기 좋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풍경이 새롭다”는 후기가 쌓이고 있다.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지난해 경주시 관광객 수는 코로나19 직전 수준을 회복하며, 300만 명을 넘어섰다. 특히 석굴암, 국립경주박물관, 보문관광단지 등 대표 명소에 대한 재방문율이 꾸준히 늘고 있다. 한 여행사 담당자는 “과거엔 하루 만에 유적을 둘러보고 떠났지만, 최근엔 2~3일 머물며 천천히 둘러보려는 흐름이 뚜렷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흐름을 ‘단절 없이 이어지는 일상형 여행’이라 해석한다. 트렌드 분석가 이민정 씨는 “경주는 단순히 박물관이나 사찰이 아닌, 일상 위에 과거가 겹쳐지는 특별한 도시”라며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장소에서 스스로를 돌보고 싶어하는 심리가 되살아난다”고 느꼈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사실 예전엔 재미없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오히려 그 고즈넉함이 좋아졌다”, “호수 옆 벤치에 앉아 바람을 맞는 것만으로도 차분해진다” 등, 여행의 목적이 ‘자극’에서 ‘쉼’으로 옮겨갔다는 반응이 많다. 보문호 물결 위로 번지는 계절의 빛, 석굴암 산책로로 스며드는 바람마저 ‘내가 쉬어간 자취’로 남는다고 말한다.
작고 사소한 변화지만, 그 안엔 달라진 삶의 태도가 담겨 있다. 누군가에게 경주 행이며, 누군가에게는 집 근처 공원 산책일지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 길 위에서 마음의 숨은 결을 다시 만나는 시간이라는 사실이다. 여행은 끝났지만, 그때의 마음은 지금도 나와 함께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