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건강권 요구 격돌”…택배노조 ‘새벽배송 금지’ 주장에 현대차 밤샘근무 폐지 사례 소환
노동자 건강권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다시 불붙고 있다. 전국택배노동조합이 야간 장시간 노동의 폐해를 지적하며 ‘새벽배송 금지’를 주장하면서, 2013년 현대자동차에서 노사 합의로 밤샘 근무를 없앴던 사례까지 언급했다. 임금 유지를 조건으로 밤샘 노동을 폐지했던 현대·기아차의 전례가 노동계 내 주장의 근거로 재소환되는 모양새다.
택배노조는 최근 국회에서 열린 사회적 대화 자리에서 “현대차도 2013년 심야노동을 폐지하고 주간 연속 2교대제를 도입해 지역사회 만족도까지 크게 올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간 연속 2교대제 실시로 노사 모두 만족했다”며 밤샘 근무 폐지가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한다는 점을 겨냥했다.

실제로 현대차는 2013년 3월, 기아차는 그해 주요 공장에서 40년 넘게 지속해온 밤샘 근무를 역사 속으로 밀어냈다. 양사는 하루 10시간이 넘던 직원 노동시간을 8.5시간으로 줄이고도 임금은 지키는 합의에 도달했다. 노사 간 10년 간의 사회적 대화와 합의가 실제로 결실을 맺은 셈이다.
이병훈 중앙대학교 명예교수는 “당시에도 건강권이 쟁점이었고, 노사 간 작은 사회적 대화가 모범적 합의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치권과 노동계 일각에서는 택배노조의 새벽배송 금지 주장이 그대로 현대차 사례로 이어질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노조 조직률이나 현장 노동자 여론 등에서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실제 2013년 당시 현대차 노조 가입률은 90%를 넘겼던 반면, 올해 기준 전국 택배기사 약 10만 명 중 민주노총 택배노조 가입자는 5천 명(5%) 수준에 머무른다.
이 같은 낮은 조직률 탓에 “택배노조가 현장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이어진다. 2023년 택배노조를 탈퇴한 쿠팡노조는 “대다수 야간기사들이 새벽배송 금지를 반대한다”고 밝혔으며, 쿠팡파트너스연합회가 최근 회원 택배기사 2천40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선 93%가 새벽배송 금지에 반대했다.
소비자와 업계의 거센 반발도 변수다. 소비자단체를 비롯해 한국중소상공인협회, 온라인쇼핑협회 등 경제계 주요 단체가 “소비자 불편 확대”를 근거로 새벽배송 제한에 일제히 반대 입장을 냈다. 한국소비자단체연합이 더브레인에 의뢰해 국민 1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4.1%가 새벽배송이 중단되면 불편을 겪을 것이라고 답했다.
정치권과 학계에서는 이해당사자 모두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병훈 교수는 “노동자 건강 보호 차원에서 충분히 논의해야 할 사안”이라고 했고, 이종선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부소장도 “밤샘 노동의 과로사 연관성 등 문제는 사회적 대화 없이 결론 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여야는 조직률, 노동시장 구조, 소비자 불편 등 논점별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중이다. 정부 역시 성급한 정책 추진보다는 충분한 의견 수렴을 예고하며 신중한 접근을 시사하고 있다. 국회는 택배노동자 건강권, 새벽배송 문제의 사회적 대화를 뒷받침할 추가 입법 논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