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런 IP로 제주 알렸다…데브시스터즈 지역관광 마케팅 실험
게임 지식재산권을 활용한 지역관광 마케팅이 IT 콘텐츠 기업의 새로운 수익 모델이자 브랜드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 데브시스터즈가 대표작 쿠키런을 앞세워 제주관광공사와 진행한 장기 협업 캠페인을 마무리하면서, 게임 캐릭터가 관광 콘텐츠·친환경 프로그램·문화체험을 아우르는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례를 지역관광 디지털 전환과 IP 비즈니스 확장의 분기점 중 하나로 보는 시각도 있다.
데브시스터즈는 15일 제주관광공사와 함께 추진한 제주여행주간 캠페인을 종료했다고 밝혔다. 양측은 지난 6월 제주 여행 콘텐츠 확산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약 6개월 동안 쿠키런을 제주 여행 홍보 마스코트로 내세웠다. 게임사와 지역 관광공사가 장기간 공동 기획·운영한 지역 마케팅이라는 점에서 IT 업계와 관광 업계 모두의 관심을 모았다.

기술적으로 보면 이번 협업은 게임 IP를 오프라인 동선 설계와 결합한 사례에 가깝다. 데브시스터즈는 제주국제공항 내에 쿠키런 환대 부스를 설치하고, 공항 입도 지점부터 캐릭터 경험을 시작하도록 설계했다. 귤 모자를 쓴 용감한 쿠키 에어벌룬, 지역 콘셉트에 맞춰 디자인된 쿠키 인형탈, 다양한 굿즈 전시는 캐릭터 그래픽과 현실 공간을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게임 속 세계관과 현실 관광 동선을 연결해 체류시간을 늘리고 방문객 체감 만족도를 끌어올리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관광 동선 설계 측면에서 핵심은 스탬프 투어였다. 한림, 애월, 세화, 성산 등 제주 대표 지역 12곳, 100개 이상의 관광지를 연결하는 대규모 쿠키런 스탬프 투어를 운영해 섬 전반에 걸친 순환형 이동 루트를 구성했다. 이용자는 게임에서처럼 여러 지점을 공략하는 방식으로 주요 명소를 방문할 수 있었고, 이는 특정 유명지 편중을 줄이고 관광 수요를 분산시키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콘텐츠 구성도 양극화된 관광 수요를 고려해 설계됐다. 성산일출봉, 제주민속촌, 카멜리아힐, 한림공원 등 이미 잘 알려진 관광지와 더불어 신평 곶자왈 레이스, 한경 저지오름 트레킹, 안덕 메밀꽃 트레킹 등 숨은 코스를 함께 제시했다. IP를 미끼 상품이 아니라 탐색의 안내자로 활용하면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지역으로 관광 동선을 확장하려는 시도다.
지속가능성·ESG를 내세운 프로그램도 병행했다. 세화 도파밍 트레일 런은 현지 식자재를 직접 수확하는 체험형 러닝 프로그램으로, 단순 관광을 넘어 지역 농업과의 연계를 꾀했다. 표선 마음 봉그깅은 해수욕장을 걸으며 쓰레기를 수거하는 형태로 설계돼, 해양 환경 보호와 참여형 액티비티를 동시에 만족시키려 했다. 헌옷 티코스터 제작이나 폐해녀복을 활용한 고래꼬리 키링 제작 등은 업사이클링 경험을 제공하면서 관광객이 ESG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접하도록 하는 장치로 작동했다.
글로벌 콘텐츠 산업에서는 캐릭터 IP를 관광과 결합한 사례가 이미 활발하다. 일본의 지역 철도와 연계된 애니메이션 캐릭터, 미국 테마파크의 영화 IP 활용이 대표적이다. 데브시스터즈의 행보는 국내에서도 게임 IP를 방한 관광, 지방 도시 브랜딩 등에 본격적으로 접목하는 흐름이 커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IT 기업 입장에서는 디지털 굿즈와 오프라인 체험을 연계한 옴니채널 수익 모델을 실험하는 장으로도 기능한다.
데브시스터즈는 이번 제주 협업을 계기로 IP 기반 사회·문화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9일에는 국가유산청과 손잡고 덕수궁 돈덕전 특별전을 열어, 게임 IP와 국가유산을 결합한 전시형 콘텐츠를 선보였다. 서울 강남구와는 문화예술사업 확산을 위한 협업을 추진 중으로, 도심 문화 인프라와 게임 세계관을 연결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내년에는 전통 무형문화 장인들과 협업한 아트 콜라보 프로젝트 작품 10종을 한자리에 모은 종합 전시도 계획돼 있다. 게임 그래픽과 장인의 수공예를 결합해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피지컬 융합 작품을 선보이려는 시도로, IP를 단순 캐릭터 수준이 아니라 문화 플랫폼으로 확장하려는 전략과 맞닿아 있다. 이런 전시는 향후 디지털 굿즈, NFT와 같은 가상 자산 연계 모델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게임사와 공공기관의 협업이 관광·문화 데이터 축적에도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스탬프 투어 참여 패턴, 프로그램 선호도, 체류 시간 등의 정보가 축적되면 향후 맞춤형 관광 추천, 이동 동선 최적화 같은 디지털 서비스에 활용될 여지도 있다. 다만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활용 범위를 둘러싼 제도 정비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병행된다.
콘텐츠 업계 관계자는 캐릭터 IP는 팬덤 기반이 탄탄해 지역관광, 국가유산, 무형문화재와 같은 공공재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도구로 쓰일 수 있다며 IP 비즈니스가 광고를 넘어 지역 생태계와 연계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계는 게임 IP와 지역 관광, 문화유산을 잇는 이런 시도가 단발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