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제도 개편, 공론화 거쳐 신중히 해야"…조희대, 이재명 앞에서 견제 메시지
정치권의 사법개혁 드라이브와 사법부의 신중론이 맞부딪쳤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5부 요인 오찬 자리에서 사법제도 개편은 충분한 논의와 공론화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국회에서 추진 중인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와 재판소원 도입 등 쟁점 현안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뒤따랐다.
조 대법원장은 3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 초청 5부 요인 오찬 모두발언에서 "사법제도는 국민의 권리 보호와 사회질서 유지를 위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기에 충분한 논의와 공론화 과정을 거쳐 신중하게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사법부에 대해 걱정과 우려를 가진 국민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언급하며 사법 불신 여론을 의식하는 모습을 보였다.

조 대법원장은 재판의 정당성과 관련해 3심제의 의미를 재차 부각했다. 그는 "물론 사법부의 판단에 대해 국민 모두가 동의할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개별 재판의 결론은 헌법과 법률에 규정된 3심제라는 제도적 틀 안에서 충분한 심리와 절차를 거쳐 최종적으로 결정된다는 점에서 그 정당성과 신뢰가 확보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헌법소송과 별도로 법원의 판결을 다시 다투는 재판소원 도입 논의에 사실상 부정적 입장을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사법제도 개편이 국민을 위한 방향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가져 달라"고도 당부했다. 이 발언은 이재명 대통령과 우원식 국회의장 등 행정부·입법부 수장이 한 자리에 모인 자리에서 나온 만큼,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대법관 증원, 법원행정처 폐지 등 사법개혁안에 대해 신중한 접근을 요구한 메시지로 해석되는 분위기다.
최근 국회에서는 12·3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내란죄, 내란음모죄 등 정치적 중대 범죄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법안,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재판소원 제도 도입 논의 등이 속도를 내고 있다. 개혁 입법을 서두르는 정치권 흐름과 달리, 조 대법원장은 제도 변경의 파급력을 고려해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못박은 셈이다.
조 대법원장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1년을 되짚으며 사법부의 역할도 강조했다. 그는 "헌정질서의 온전한 회복을 위해 국가의 모든 기관이 각자의 헌법적 책무를 다하고자 최선을 다해 노력해 온 시간이었다"며 "저를 비롯한 사법부 구성원들도 법치주의의 근간을 지키면서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통해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헌법적 사명을 다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비상계엄 조치에 대한 사법부의 입장도 재확인했다. 조 대법원장은 "사법부는 비상계엄 직후 그것이 반헌법적 행위임을 분명히 했다"고 밝히며, 법원이 계엄 조치의 위헌성을 조기에 지적했음을 강조했다. 다만 "현재 법원에서 관련 사건이 진행되고 있어 대법원장으로서 이에 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언급하며 구체적 평가는 자제했다.
그는 재판의 독립성과 법관 개별 판단을 존중해 달라고도 요청했다. 조 대법원장은 "개별 재판부가 오직 헌법과 법률에 따라 신속하고 공정하게 재판할 것이라 믿고 있다"고 말하며, 진행 중인 계엄 관련 사건은 각 재판부에 맡겨야 한다는 점을 재차 부각했다.
이날 발언은 12·3 비상계엄 사태를 둘러싼 정치적 책임 공방과 사법개혁 논의가 맞물린 상황에서 나와 정치권에 적지 않은 파장을 낳을 전망이다. 국회 다수 의석을 보유한 더불어민주당은 사법개혁 입법을 가속화하려는 입장인 반면, 사법부는 3심제 유지와 재판 독립을 전제로 신중론을 강조하고 있어 향후 행정부·입법부·사법부 간 힘겨루기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국회는 향후 정기회와 임시회에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재판소원 도입, 법원행정체계 개편 등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의를 이어갈 전망이다. 정치권은 사법제도 개편 방향을 두고 정면 충돌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정부와 국회는 공론화 과정을 확대해 제도 개편의 사회적 합의를 모색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