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장분획제 자급화 시동”…SK플라즈마, 인니 첫 수출로 CMO 전략 본격화
혈장 기반 바이오의약품인 혈장분획제제가 신흥국 보건의료 자급화 전략의 핵심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SK플라즈마가 인도네시아 자국민 혈장을 활용해 생산한 혈장분획제 완제품을 처음으로 출하하며, 위탁생산과 기술이전을 결합한 새로운 글로벌 협력 모델을 제시했다. 그동안 전량 수입에 의존해온 인도네시아 혈장의약품 시장에서 국산 혈장 기반 제품이 공급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업계는 향후 동남아 지역 혈장 의약품 공급망 재편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SK플라즈마는 4일, 경북 안동공장에서 인도네시아 혈장을 원료로 제조한 혈장분획제 완제품의 초도 물량을 2일 출하했다고 밝혔다. 이번 출하는 인도네시아 복지부가 2023년에 추진한 혈장분획제제 자급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SK플라즈마와 인도네시아 측 합작법인인 SK플라즈마 코어 인도네시아가 사업자로 선정된 뒤 첫 가시적 성과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현지 생산 인프라가 본격 가동되기 전까지 한국 CMO 생산을 통해 필수 혈장의약품을 공급받는 구조를 택했다.

혈장분획제제는 헌혈을 통해 얻은 사람 혈장에서 알부민, 면역글로불린 등 특정 단백질을 분리 정제해 만드는 바이오의약품이다. 알부민은 수술 및 외상 환자의 혈액량 보충에, 면역글로불린은 면역결핍증과 각종 감염성 질환 치료에 널리 쓰인다. SK플라즈마는 지난 4월 인도네시아에서 수집된 자국민 혈장을 공급받은 뒤, 안동공장에서 분획과 정제 등 주요 공정을 거쳐 알부민과 면역글로불린 제품을 완제 형태로 생산했다. 이는 인도네시아 국민 혈장이 처음으로 자국 환자 치료용 완제품으로 되돌아가는 구조라는 의미가 있다.
특히 이번 모델은 혈장 수급과 생산이 분리된 신흥국 특유의 한계를 보완하는 구조로 평가된다. 인도네시아는 인구가 많고 혈장 공급 잠재력이 크지만, 고도화된 분획 설비와 품질관리 인프라가 부족해 혈장분획제제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해왔다. SK플라즈마는 한국에 구축된 대형 분획 설비와 품질 시스템을 활용해 CMO 방식으로 제품을 공급하고, 동시에 인도네시아 현지 생산시설과 인력, 혈장센터 인프라를 단계적으로 키우는 이중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회사는 이번 초도 수출을 시작으로 현지 생산 인프라가 상업 가동되기 전까지 약 30만리터 규모의 인도네시아 혈장을 위탁 생산해, 인도네시아 정부의 필수의약품 공급을 지속적으로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혈장 30만리터는 수십만 명 단위 환자 치료에 활용될 수 있는 물량으로, 그동안 수입 의존으로 인한 공급 불안과 가격 변동 리스크를 일정 부분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팬데믹 이후 혈장 기반 치료제 수요와 전략 비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중장기적인 공급 안정 효과도 기대된다.
글로벌 혈장의약품 시장에서는 이미 미국과 유럽 기반 다국적 기업들이 대규모 혈장 채혈 네트워크와 분획 공장을 중심으로 시장을 선점해왔다. 반면 신흥국 상당수는 헌혈 인프라는 갖추고도 고난도 분획 공정을 직접 운영하기 어려워, 원료 혈장을 수출하거나 완제품을 수입하는 방식에 머물러 왔다. SK플라즈마의 인도네시아 프로젝트는 자국민 혈장을 해외에서 위탁 생산한 뒤, 중장기적으로 현지 플랜트와 인력을 육성하는 단계적 자급화 모델로, 향후 다른 동남아와 중동 국가로 확장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국내에서는 혈장분획제제가 생물학적 제제로 분류돼 엄격한 품질관리와 안전성 평가 기준을 적용받고 있다. SK플라즈마는 한국에서 인정된 제조관리와 품질관리 시스템을 기반으로 인도네시아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향후 현지 공장에도 동일 수준의 기준과 절차를 이식한다는 구상이다. 향후 인도네시아 규제당국과의 협업을 통해 현지 허가와 GMP 기준 정착 등이 추진될 경우, 바이오의약품 분야 기술·제도 협력 모델로 확장될 여지도 있다.
김승주 SK플라즈마 대표는 인프라 구축 기간 동안 현지 공장을 운영할 인력 양성과 혈장센터 확대에 기여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CMO 공급뿐 아니라 설비 구축과 기술 이전을 위한 사전 교육까지 병행해 인도네시아 혈장분획제 자급화 인프라가 조속히 구축되고 가동될 수 있도록 전사적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산업계는 이번 프로젝트가 신흥국 보건의료 수요와 국내 혈장 바이오 기술력이 결합된 사례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실제 시장 안착 과정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