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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넘어선 우주 관광”…블루오리진, 첫 휠체어 이용자 비행 성공

윤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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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가진 이용자도 참여할 수 있는 상업 우주 비행이 현실로 다가가고 있다. 민간 우주 관광 시장이 단순한 부유층 체험을 넘어, 접근성 기술과 포괄적 설계의 시험장이 되는 흐름이다. 업계에서는 휠체어 이용자의 첫 우주 비행을 상징적 분기점으로 보며, 향후 우주선 설계와 관련 규제에서 ‘유니버설 디자인’ 요구가 본격화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독일 출신의 하반신 마비 엔지니어 미카엘라 벤트하우스는 21일 미국 텍사스 서부 발사장에서 블루오리진의 준궤도 관광 로켓 뉴 셰퍼드에 탑승해 약 10분간 우주 비행에 성공했다. 캡슐은 고도 약 105킬로미터까지 도달했으며, 벤트하우스는 약 3분간 무중력 상태를 경험하면서 지구를 내려다봤다. 휠체어 이용자가 우주 비행에 성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7년 전 산악자전거 사고로 척수 손상을 입은 벤트하우스는 하반신 마비 상태로, 평소 이동은 휠체어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발사 단계에서는 안전을 위해 휠체어를 지상에 남겨두고, 좌석 고정 장치와 보조 장비를 활용해 몸을 고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착륙 직후에는 회수팀이 사전에 설계한 동선을 따라 휠체어를 신속히 제공해 지상 이동을 지원했다. 이는 기존 우주선 운용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장애인 접근성 프로세스를 구체적으로 구현한 사례로 평가된다.

 

블루오리진은 뉴 셰퍼드 캡슐이 설계 단계부터 접근성 요소를 반영했다고 설명한다. 실내 공간을 넓게 확보해 좌석 간 이동 여유를 두고, 문턱과 계단을 최소화해 승하선 동작을 단순화했다. 또 비상 대응 시 승무원과 지원 인력이 장애 특성을 고려해 신체를 고정하고 보조 장비를 연결할 수 있도록 표준 운영 절차를 구성했다. 시각·청각 장애 승객을 위한 시각 신호와 진동, 음성 안내의 중복 설계도 적용된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이번 비행에서는 하반신 제어가 어려운 사용자를 고려해, 이착륙 단계에서의 가속도에 대비한 전용 안전벨트 구성과 좌석 각도 조절이 이뤄졌다. 통상 준궤도 관광 로켓이 제공하는 3분 안팎의 무중력 구간에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탑승 전 지상 모의 훈련을 통해 우주선 내부 이동 동작을 반복 숙달한 점도 특징으로 꼽힌다.

 

이번 임무에는 독일 출신 항공우주 전문가이자 전 스페이스엑스 임원 한스 쾨니히스만도 동승했다. 그는 비행 준비 단계에서 접근성·안전성 검증에 참여했고, 블루오리진과 함께 해당 임무를 후원한 인물로 알려졌다. 민간 우주 기업 간 인력 교류가 이뤄지면서, 상업 우주선의 안전 기준과 사용자 경험 설계가 일정 부분 공유되는 흐름이 가속되는 모습이다.

 

상업 우주 관광 시장에서는 접근성을 새로운 차별화 지점으로 보는 시각이 힘을 얻고 있다. 블루오리진은 그동안 이동 제약을 가진 승객, 고령자, 감각 장애인이 포함된 다양한 배경의 민간인을 뉴 셰퍼드에 탑승시켜 왔다. 경쟁사인 버진갤럭틱도 휠체어 이용자의 무중력 체험을 지원하는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향후 본격적인 장애인 우주 관광 상품 개발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민간 우주 비행을 추진하는 기업이 사실상 항공 운송 사업자에 준하는 안전·차별금지 의무를 져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하다. 휠체어 이용자의 우주 비행 사례가 늘어날 경우, 좌석 설계 규격, 비상 탈출 기준, 지상·우주 환경에서의 의료적 리스크 평가 등 세부 규제 논의가 구체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특히 우주선 내부에서의 무중력 동작이 척수 손상이나 심혈관 질환을 가진 승객에게 미치는 영향을 장기적으로 추적·분석하는 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유럽에서는 유럽우주국을 중심으로 ‘다양성과 포용’을 내세운 우주 인력 선발과 훈련 프로그램이 확대되는 추세다. 벤트하우스는 현재 네덜란드에서 유럽우주국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 중으로, 이번 비행은 개인 임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실제 장애인 우주 비행 데이터가 확보됨에 따라 유럽우주국의 향후 우주선·우주정거장 설계 가이드라인, 지상 훈련 커리큘럼에 간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우주 산업에서 접근성은 단순한 복지 개념을 넘어, 신시장 창출과 기술 개발을 자극하는 요인으로 부각된다. 휠체어 이용자를 포함한 다양한 신체 조건의 사용자를 전제로 할 경우, 경량화된 탑승 보조 장치, 표준화된 모듈형 내장 구조, 생체 신호 기반 안전 모니터링 같은 신기술 수요가 늘어날 수 있어서다. 지상에서는 이러한 설계와 장비가 항공기, 고속철, 대형 이동 플랫폼으로 확산되며, 교통·도시 인프라 전반의 접근성 개선을 촉진할 여지도 있다.

 

벤트하우스는 착륙 직후 인터뷰에서 상승 전 과정에서 웃음을 멈출 수 없었고, 무중력 구간에서는 몸을 거꾸로 돌려보는 등 우주 공간을 적극적으로 체험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 우주에 간 전례가 없다는 인식 탓에 한때 불가능하다고 느꼈지만, 제안을 받자 망설임 없이 도전했다고 말했다. 또 이번 경험이 장애인의 우주 접근성 확대는 물론, 지상에서의 건축·교통·디지털 서비스 접근성 논의에도 긍정적 변화를 유도하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한편 블루오리진은 이번 임무를 통해 누적 우주 비행 인원이 86명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회사는 향후 대형 로켓 뉴 글렌을 활용해 궤도 비행과 달 탐사 임무에 진출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뉴 글렌과 같은 차세대 우주선에도 장애인 탑승을 전제로 한 접근성 설계 요구가 확산될 가능성을 거론한다. 상업 우주 관광이 대중화 단계에 들어갈수록, 산업계는 이 기술이 실제 시장에 안착하면서도 포용적 설계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윤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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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오리진#미카엘라벤트하우스#뉴셰퍼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