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AI 매출 전망이 움직이는 과녁”…브로드컴·오라클 동반 급락, 월가 AI 회의론 재점화

송우진 기자
입력

11일(현지시각) 미국(USA) 뉴욕 증시에서 인공지능(AI) 관련 성장 기대를 이끌어온 반도체·클라우드 대표주 브로드컴과 오라클 주가가 동반 급락하며 월가의 AI 낙관론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시장 예상에 못 미친 AI 매출 전망과 클라우드 성장 둔화가 드러나면서, 글로벌 투자자들 사이에서 AI 성장 서사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확산하는 모습이다.  

 

현지시각 기준 11일, 미국 반도체 업체 브로드컴은 2025회계연도 4분기(8∼10월) 실적 발표 후 컨퍼런스콜에서 향후 6개 분기 동안 출하할 AI 제품 수주 잔고가 730억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다. 호크 탄 브로드컴 최고경영자(CEO)는 이 금액을 “최소치”라고 강조하며 추가 주문이 더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럼에도 투자자들은 수주 규모가 시장 기대에 못 미친다고 판단해, 브로드컴 주가는 시간외거래에서 4.5% 떨어졌다.  

브로드컴, AI 매출 전망에 시간외 4.5% 급락…오라클 10.8% 하락
브로드컴, AI 매출 전망에 시간외 4.5% 급락…오라클 10.8% 하락

탄 CEO는 4분기 동안 AI 챗봇 ‘클로드’를 개발한 미국 스타트업 앤트로픽으로부터만 110억달러 규모의 신규 주문을 확보했다고 소개하며 “AI 관련 주문은 매우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그는 AI 제품 비중이 확대되면서 전체 수익성에 부담이 되고 있는 상황을 경고했다. AI 제품 매출이 늘어나는 과정에서 오히려 회사 전체 마진이 줄어들고 있다고 인정해, 수익 구조에 대한 시장의 경계심을 키웠다.  

 

브로드컴 경영진은 AI 수요의 변동성이 크다는 점을 들어 2026회계연도 AI 매출 가이던스 제시를 유보했다. 탄 CEO는 내년 AI 매출 전망과 관련해 “움직이는 과녁과 같다”고 표현하며, 구체적인 수치를 내놓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만 브로드컴은 2026회계연도 1분기 매출을 191억달러로 제시해 월가 예상치 185억달러를 웃도는 가이던스를 내놓았고, 분기 배당금도 주당 65센트로 10%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브로드컴은 미국 구글(Google)의 AI 전용 반도체 ‘텐서처리장치’(TPU)를 공동 개발하는 핵심 파트너로, AI 칩 시장에서 미국 엔비디아(NVIDIA)의 주요 경쟁사로 평가받는다. 최근 글로벌 AI 칩 시장에서 구글 TPU는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대체할 수 있는 옵션으로 부상하며, 메타플랫폼 등 대규모 AI 투자 기업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엔비디아가 AI 칩 시장 점유율 80∼90%를 차지한 상황에서, 브로드컴과 구글 TPU는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대안으로 주목받아 왔다. 이번 실적 발표는 이러한 기대가 단기적으로 주가에 과도하게 반영됐다는 인식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같은 날 미국 증시에서는 오라클 주가가 10.8% 급락했다. 전날 정규장 마감 후 발표된 분기 실적에서 클라우드 인프라 부문과 전체 클라우드 매출이 모두 시장 예상치를 밑돌았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AI와 클라우드 사업을 둘러싼 성장 기대에 균열이 생겼다. 오라클은 그동안 AI 워크로드를 수용할 인프라 확대를 앞세워 성장 스토리를 부각해 왔으나, 실제 숫자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월가의 실망 매도가 쏟아진 것이다.  

 

시장에서는 브로드컴의 AI 매출 가이던스 관련 실망과 오라클의 클라우드 실적 부진이 동시에 드러난 점에 주목하고 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AI 수요가 구조적으로 강하지만, 개별 기업의 실적과 마진이 이를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면 주가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뉴욕 현지 증권가에서는 AI 인프라 투자가 계속되더라도 수익성, 고객 집중도, 공급 경쟁 심화 등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단기 주가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번 조합된 악재는 글로벌 AI 투자 심리에 냉각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관측도 힘을 얻고 있다. 미국 경제 매체들은 브로드컴과 오라클의 부진을 계기로 “AI 성장 스토리에서 ‘선별된 승자’ 찾기가 본격화될 것”이라며, 기술주에 쏠려 있던 자금이 실적 검증 국면을 거칠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AI 반도체·클라우드 인프라 수요가 견조할 것이라는 전망도 여전해, 이번 조정이 추가 매수 기회가 될지, 구조적 재평가의 출발점이 될지를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AI 관련 실적이 기대치를 조금만 밑돌아도 주가 변동성이 과도하게 확대되는 현상에 주목하면서, 향후 몇 분기 동안 주요 빅테크와 인프라 업체들의 AI 투자 집행 속도와 수익성 개선 추이가 글로벌 금융시장의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사회와 금융시장은 이번 발표와 주가 반응이 AI 투자 열기에 어떤 조정을 가져올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송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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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컴#오라클#엔비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