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향 장기수 송환, 북 억류자와 연계 안해"…통일부, 인도적 원칙 재확인
북한 억류자 문제를 둘러싸고 통일부와 대통령실 안보라인 간 인식 차가 불거졌다. 통일부는 북한에 억류된 우리 국민 석방 문제를 국내 비전향 장기수 송환과 연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인도주의 원칙을 강조했다. 그러나 과거 정부에서 이 사안이 북측과 협의돼 "석방 직전" 단계까지 갔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향후 대북 교섭 전략을 둘러싼 논쟁이 커지는 분위기다.
통일부 당국자는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전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의 발언과 관련한 질문에 "북한에 억류된 우리 국민 석방과 국내 비전향 장기수 송환 문제를 연계해 검토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전날 위성락 안보실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외신 기자회견 이후 진행된 질의응답에서 억류자 문제 대책과 관련해, 북한 내 억류자 석방과 국내 비전향 장기수 북송을 연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북한 전문매체 NK뉴스가 보도했다.

통일부는 같은 날 언론안내문을 통해 "정부가 비전향 장기수를 인도적 차원에서 송환할 방침이며 관련 검토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억류자 문제 해결의 시급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북한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해, 두 사안을 각각 별도의 인도주의·안전보장 과제로 다루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현재 우리 정부가 북한 내 억류자로 공식 확인한 국민은 김정욱 선교사, 김국기 선교사, 최춘길 선교사를 포함해 총 6명이다. 이들은 2013년부터 2016년 사이 북한에 억류됐으며, 이후 생사와 구체적 소재가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가족들은 장기간 소식이 끊긴 상황에서 불안과 고통을 호소해 왔다.
한편 국내 비전향 장기수들의 북송 요구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최근 비전향 장기수 안학섭 씨는 정부에 공식적으로 북한 송환을 요청했고, 안 씨를 포함해 북송 의사를 밝힌 장기수는 5∼6명으로 알려졌다. 통일부는 관련 인원과 절차를 검토 중이라며, 인도적 고려를 최우선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 차원의 억류자 문제 교섭은 2018년 이후 사실상 멈춰 선 상태다. 통일부에 따르면 우리 정부가 북측과 억류자 문제를 공식 의제로 제기한 마지막 기록은 2018년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 그해 6월 열린 남북고위급회담이다. 당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회담에서 억류자 문제 해결을 요구했고, 이에 북측 대표단장 리선권은 "현재 국내 전문기관들에서 철저히 검토하고 있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후 구체적인 이행 조치나 석방 합의로 이어지지 못하며 실질 진전은 없었다.
당시 협상 과정에 관여했던 전직 청와대 인사들의 평가도 잇따르고 있다. 문재인 정부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이날 오전 사회관계망서비스에 글을 올려 당시 논의 상황을 언급했다. 윤 의원은 "2018년 남북정상회담과 고위급 회담 과정에서 억류자 문제를 지속 제기한 결과, 석방 직전까지 이르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김정은 위원장은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억류자 석방에 최선을 다하겠다, 좋은 소식을 들려주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했다"고 썼다. 다만 윤 의원은 당시 억류자들의 생사 확인 여부나 구체적 합의 문안 수준에 대해서는 별도로 적시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통일부와 대통령실 사이 메시지 조율 필요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억류자 석방과 비전향 장기수 송환을 교환 형식으로 연계할 경우 인도주의 원칙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반대로 현실적인 협상 수단을 동원하지 않고는 교착 상태가 풀리기 어렵다는 현실론이 맞서고 있어서다. 여야는 공식 논평을 자제하고 있지만, 물밑에서는 대북 인도주의 정책과 안보·인권 접근법을 놓고 이견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외교·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시각이 갈린다. 일부는 억류자 문제와 장기수 송환이 모두 인도주의 범주에 속하는 만큼 원칙적으로 교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반면 다른 전문가들은 국제협상 관행상 상호 조치를 활용한 신뢰 구축이 불가피하다며, 인도주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연계 전략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는 평가도 뒤따랐다.
다만 정부는 억류자 문제의 시급성을 재차 환기하면서도 구체적인 협상 구도나 채널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통일부는 언론안내문에서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만 밝히며, 판문점이나 제3국을 통한 접촉 가능성 등 세부 방식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날 통일부의 선 긋기로 비전향 장기수 송환과 억류자 석방은 당분간 다른 궤도로 진행될 전망이다. 정부는 향후 인도적 협력과 대북 인권·안보 정책을 아우르는 종합 로드맵을 마련하겠다는 구상 아래, 억류자 문제 해법을 계속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은 남북관계 경색 국면에서 억류자 문제를 둘러싼 정부의 접근 방식과 과거 정부의 교섭 경과를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일 가능성이 크며, 국회는 관련 상임위 보고를 계기로 정책 방향을 점검해 나갈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