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집단행동 허용 논의해야"…이재명 대통령, 힘의 균형 위한 공정거래법 손질 시사
중소기업과 대기업 사이 힘의 불균형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부각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중소기업과 가맹점, 대리점의 집단행동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방향을 언급하면서 정치권과 재계, 노동계 전반의 파장이 예상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17일 세종특별자치시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중소벤처기업부 업무보고에서 중소기업과 가맹점, 대리점 등 이른바 약자 사업자의 단체행동 허용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납품업체와 대리점 등이 대기업 등 특정 기업을 상대로 연합해 교섭하고, 필요할 경우 집단행동까지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통령은 "중소기업, 가맹점, 대리점 등이 연합·단결 활동을 할 수 있게 열어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면서, 현행 제도 아래에서는 기업 간 집단행위가 공정거래법으로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납품 기업이나 대리점 등 특정 기업과 거래하는 동종 업체들이 집단으로 협상하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집단행동을 할 수 있게 해야 힘의 균형이 맞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정거래법 구조에 대한 비판도 내놨다. 이 대통령은 "기업들의 경우는 공정거래법상 원칙적으로 단체행동이나 단결 행위, 집단 교섭 행위가 다 금지돼 있다"며 "이게 약자들에 대한 강자들의 착취, 불공정 거래를 강요 혹은 권장하다시피 하는 상황이 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과 가맹점 등 거래상 열위에 있는 주체들이 연대할 수 없게 막아 놓은 현행 규제가 대기업 등 우월적 지위 남용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은 시장경제의 공정한 작동 조건을 언급하며 힘의 균형 개념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는 "공정한 시장 질서, 자본주의 시스템이라는 게 힘이 대등할 때 작동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며, 과거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을 금지하고 탄압한 것이 대공황의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논의가 있다고 언급했다. 노동 분야에서 단체행동권을 인정한 역사적 경험을 기업 간 거래 관계에도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그는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구조적 관계를 강자와 약자의 구도로 규정했다. 이 대통령은 "소수의 강자 기업과 대부분 종속된 압도적 다수의 납품기업, 여기서도 힘의 균형을 이뤄주는 게 정말 중요한 과제가 된 것 같다"며 "강자들은 자기 힘을 주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우월적 지위를 견제할 제도적 장치가 부족한 상황에서, 집단교섭과 집단행동을 허용하는 방향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다만 이 대통령은 약자의 권한 확대가 무제한적으로 허용돼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약자의 횡포'도 있을 수 있으니 그런 상황이 되면 통제하고,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예외적으로 통제하는 식으로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시장 참여자 간 연대와 집단행동을 제도적으로 인정하되, 남용 시에는 사후 통제 장치를 두는 이원적 구조를 제안한 셈이다.
이날 발언은 중소벤처기업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나왔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중소기업, 소상공인, 스타트업 육성을 담당하는 부처로, 거래 공정성 확보와 불공정 하도급 근절 문제는 핵심 과제다. 특히 납품단가 연동제, 가맹·대리점 불공정 거래 개선 요구가 이어져 온 만큼, 대통령의 공정거래법 손질 시사는 중소기업 정책 전반의 기조 변화 논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정치권에서는 공정거래법과 노동 3권의 경계에 대한 논쟁이 가열될 전망이다. 여당과 야당은 그간 대기업 규제와 중소기업 보호를 놓고 서로 다른 접근법을 보여 왔다. 이번 발언은 중소기업과 가맹점주에게 사실상 유사 노동조합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과 맞닿아 있는 만큼, 재계 반발과 중소상공인 단체의 환영, 국회 내 법·제도 논의가 복합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재계에서는 그동안 기업 간 카르텔을 우려하며 집단행위 금지 조항을 옹호해 온 만큼, 가격 담합과 공급 조절 가능성 등을 이유로 신중론을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중소기업과 가맹점주 단체는 납품단가와 수수료, 리베이트 문제를 놓고 장기간 구조적 불공정이 누적돼 왔다며 대통령 발언을 지렛대로 제도 개선을 촉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정부가 실제 공정거래법 개정이나 별도 입법 추진에 나설 경우 국회 논의 과정은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법조계와 학계에서도 기업 간 단체행동 허용 범위와 기준, 공정거래 규제와의 충돌, 국제 경쟁법 규범과의 정합성을 두고 치열한 검토가 뒤따를 전망이다.
이날 중소벤처기업부 업무보고를 계기로 정치권은 중소기업 보호와 공정경제를 둘러싼 입법 과제를 다시 마주하게 됐다. 정부가 향후 구체적인 제도 설계 방향을 제시하면, 국회는 다음 회기에서 공정거래법 개정 여부를 둘러싸고 본격적인 논의와 공방에 나설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