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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겨울 산사”…청도 운문사로 떠나는 한겨울 감성 여행

이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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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겨울 산사를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예전엔 눈 내린 풍경을 보는 정도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고요한 산사에서 마음을 쉬어가는 시간이 하나의 겨울 일상이 됐다. 영남 알프스 자락 아래 자리한 경북 청도는 그런 겨울 여행을 시작하기 좋은 곳이다. 맑은 강물과 깊은 산세 사이로 천년 고찰과 테마파크가 나란히 놓여, 하루 안에 전혀 다른 네 가지 겨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운문면 신원리에 자리한 운문사는 560년에 창건된 오래된 사찰이다. 겨울 공기가 유난히 맑아지는 이때, 산사는 더욱 조용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여행객을 맞이한다. 경내에 들어서면 대웅보전과 작압전이 차분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고, 금당 앞 석등과 삼층석탑, 석조여래좌상, 사천왕석주 같은 문화재가 눈에 띈다. 화려한 장식 대신 절제된 선과 비례가 돋보이는 건물들 사이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느려진다.

출처=한국관광공사 운문사
출처=한국관광공사 운문사

운문사의 겨울 풍경에서 가장 많은 이들이 멈춰 서는 곳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처진 소나무다. 수백 년 동안 몸을 낮춘 채 가지를 드리운 이 나무는, 눈이 쌓인 날이면 묵묵히 시간을 견뎌 온 세월이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나무 앞에서 사진을 남기기보다는 잠시 서서 바라보고만 돌아서는 이들도 많다. “괜히 말을 아끼게 된다”는 여행자의 고백처럼, 고요한 산사 풍경은 그 자체로 긴 문장보다 긴 여운을 남긴다.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최근 관광 분야에서는 계절을 불문하고 사찰을 찾는 이들이 꾸준히 늘고 있고, 특히 겨울철 템플스테이나 산사 산책을 결합한 ‘정적 여행’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빠르게 소비하는 여행보다 한곳에 오래 머무는 방식을 택하는 이들이 많아진 것이다. 여행심리 분야에서는 이런 흐름을 ‘리셋 여행’이라 부르며,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조용한 공간에서 마음의 속도를 늦추려는 시도로 해석한다.

 

청도에서의 겨울 여행은 산사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청도읍 신도리에 위치한 청도레일바이크에서는 전혀 다른 결의 겨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청도천을 따라 이어진 철로 위를 달리다 보면, 방금 전까지 산사에서 느꼈던 묵직한 고요 대신 겨울바람과 웃음소리가 채워진다. 40분에서 50분 정도 이어지는 순환형 코스는 천천히 강을 따라가다 다시 돌아오는 구조라 익숙하면서도 지루하지 않다.

 

청도천변은 겨울이면 색을 많이 걷어낸다. 나뭇가지는 앙상해지고 둑길은 하얗게 얼어붙는다. 그런데 페달을 밟으며 바라보는 풍경은 오히려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유리처럼 반짝이는 강물, 둑을 따라 정갈하게 이어진 길, 먼 산줄기의 윤곽이 또렷해져 무채색 속의 선이 눈에 들어온다. 오르막 구간에선 자동화 시스템이 도와줘 아이와 함께 온 가족이나 체력이 걱정되는 이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여행을 다녀온 이들은 “겨울이라 망설였는데, 찬 공기 덕분에 더 기억에 남는 코스였다”고 표현했다.

 

날이 더 차가워질수록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진다. 청도 이서면 양원리의 복합문화 공간 버던트는 그런 겨울 실내 나들이의 목적지가 되고 있다. 약 2000평 규모의 넓은 공간 안에는 카페와 베이커리, 휴식 공간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다. 큰 창 너머로 보이는 겨울 풍경을 배경 삼아, 따뜻한 음료 한 잔으로 몸을 녹일 수 있는 곳이다.

 

버던트에서는 제주도 ‘그초록’의 시그니처 메뉴인 아보카도 커피와 아보카도 샌드위치를 맛볼 수 있다. 겨울 기운이 매서운 날, 고소한 아보카도와 진한 커피가 어우러진 음료는 색감부터 이국적인 온기를 전한다. 갓 구운 베이커리와 함께 곁들이면 한 끼 식사처럼 든든하다. 감각적인 인테리어와 여유 있게 배치된 좌석은 오랜 시간 머물며 대화를 나누거나 혼자 책을 읽기에도 좋다. “여행지에서 꼭 바깥 풍경만 봐야 한다는 생각이 사라졌다”는 방문객의 말처럼, 실내에서 보내는 겨울 여행의 시간이 점점 더 소중해지고 있다.

 

해가 저물 무렵, 청도의 풍경은 또 한 번 바뀐다. 화양읍 삼신리에 자리한 청도프로방스에서는 빛으로 물든 겨울밤이 열린다. 낮 동안 담백하던 마을 풍경은 형형색색 조명이 켜지는 순간 동화 속 장면으로 변신한다. 건물 외벽과 길목, 언덕을 가득 채운 조명이 밤하늘을 배경으로 반짝이면서,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발걸음을 늦추게 만든다.

 

청도프로방스의 겨울은 특히 빛축제와 산타마을 테마로 완성된다. 각양각색 조형물과 포토존은 사진 한 장을 남기려는 이들로 늦은 시간까지 북적이고, 거울 미로와 셀프 스튜디오 같은 체험 공간에서는 웃음 섞인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아이와 함께 가볼 만한 겨울밤 여행지”로 추천하는 글이 잇따른다. 낮에는 산사와 레일바이크에서 차분한 풍경을 즐기고, 밤에는 화려한 조명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는 식의 코스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여행 방식을 ‘다층적 겨울 여행’이라 표현한다. 산사의 정적, 강변의 움직임, 실내 문화 공간의 여유, 테마파크의 활기를 하루에 나눠 경험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속도와 감정의 온도를 스스로 조절하고 있다는 것이다. “겨울 여행의 본질은 몸을 옮기는 것보다 마음의 온도를 맞추는 데 있다”는 여행 칼럼니스트의 말처럼, 청도에서의 하루는 차분함과 설렘이 균형을 이룬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사진 찍으러 갔다가 생각보다 오래 머물렀다”, “템플스테이 대신 산책만 했는데도 마음이 가라앉았다”, “아이에게는 프로방스가, 나에게는 운문사가 더 기억에 남는다”는 식의 후기가 이어진다. 같은 공간을 두고도 각자 다른 순간을 마음에 담아오는 셈이다.

 

겨울의 청도는 크고 거창한 이벤트보다는, 하루를 네 개의 장면으로 나누어 천천히 감상하게 만든다. 고즈넉한 운문사에서 시작해 청도레일바이크의 낭만, 버던트의 따뜻한 실내, 청도프로방스의 빛나는 밤까지. 사소해 보이는 동선이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지금의 나에게 맞는 속도와 풍경을 다시 고르고 있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이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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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청도레일바이크#청도프로방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