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교역 35조달러 첫 돌파”…UNCTAD, 동아시아·개도국 견인 속 성장세 둔화 경고
현지시각 기준 1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세계 무역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35조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됐다. 세계 교역이 2023~2024년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 성장세를 회복한 가운데, 지정학적 긴장과 비용 상승 속에서도 동아시아와 아프리카, 개발도상국 간 교역이 확대되며 흐름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다.
UNCTAD는 이날 보고서에서 올해 글로벌 교역 규모가 지난해보다 7% 늘어나 약 35조달러 수준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전년 대비 증가액은 약 2조2천억달러로 추정됐으며, 이 가운데 상품 무역이 1조5천억달러(6.3%), 서비스 무역이 7천500억달러(8.8%) 각각 늘어날 것으로 분석했다. 현지시각 기준 2분기에 상품과 서비스 모두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뒤 3·4분기에는 성장세가 완만해지는 패턴이 관찰됐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지정학적 긴장 심화, 물류·무역 비용 상승, 불균형한 글로벌 수요 등 요인이 전반적인 교역 모멘텀을 약화시켰다고 진단했다. 그럼에도 올해 하반기까지 글로벌 무역 규모가 꾸준히 확대된 점을 들어 “세계 무역이 세계 경제 성장률을 지속적으로 상회하며 2023~2024년의 침체 국면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UNCTAD는 올해 세계 무역 성장의 주요 동력으로 동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개발도상국 간 교역 확대를 꼽았다. 동아시아에서는 역내 무역이 10% 급증하면서 수출이 9% 늘어나, 주요 지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출 증가율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이런 역내 교역 확대가 지역 생산 네트워크 강화와 공급망 재조정 움직임과 맞물려 있다고 분석했다.
아프리카의 경우 수입이 10%, 수출이 6% 증가해 전반적으로 견조한 무역 성과를 보인 것으로 평가됐다. 개발도상국 간 교역은 올해 8% 확대되며 글로벌 무역 성장세를 떠받쳤다. UNCTAD는 이러한 남남교역 확대가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와 신흥시장 간 경제 협력 심화의 흐름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국가별로는 중국과 한국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두드러진 무역 성과를 보인 것으로 지목됐다. 브라질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각각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교역 확대를 주도한 핵심 동력으로 평가됐다. 서비스 무역 분야에서는 인도와 중국이 서비스 수출에서 가장 강한 성장세를 기록하며 디지털 서비스, IT·비즈니스 아웃소싱, 관광·운송 회복 등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보고서는 동시에 글로벌 무역 구조 측면의 취약성을 경고했다. UNCTAD는 주요국 간 무역 불균형이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프렌드쇼어링’과 ‘니어쇼어링’ 전략 채택이 강화되면서 세계 무역 지도가 재편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호국 중심 공급망 재편과 인접국으로의 생산기지 이전 흐름이 가속화되며 기존의 전 지구적 분업 구조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 같은 흐름은 특정 지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려는 시도로 해석되는 한편, 교역 블록화와 새로운 형태의 무역 장벽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동반하고 있다. 일부 선진국과 신흥국은 안보·기술 통제를 이유로 특정 품목과 분야에서 교역 상대를 제한하며, 전략적 파트너 중심의 경제 협력을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여 왔다.
UNCTAD는 내년 세계 무역 전망에 대해 다소 비관적인 시각을 내놨다. 글로벌 경기 둔화, 늘어나는 국가 부채 부담, 상승하는 무역 비용, 지정학적 불확실성 지속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내년 무역 성장세가 올해보다 약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보고서는 무역 흐름이 둔화할 경우 신흥국과 취약 경제에 더 큰 충격이 가해질 수 있다며 국제 금융·무역 규범 차원의 대응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제 경제 전문가는 이번 UNCTAD 평가를 두고 “세계 교역이 양적 측면에서는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지만, 질적인 측면에서는 분절화와 불균형 심화라는 구조적 과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세계 무역이 기록적인 규모와 구조적 재편 사이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그리고 각국의 통상·산업 전략이 이에 어떻게 맞춰질지 국제 사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