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안보보다 개인 이익 우선"…방용철 전 쌍방울 부회장, 北 공작원 접촉 집행유예
여권 핵심 인사들과 연루된 대북 송금 의혹이 정국 갈등의 뇌관이 된 가운데, 쌍방울그룹 대북 송금 사건과 연결된 북한 공작원 접촉 혐의에 대해 법원이 방용철 전 쌍방울그룹 부회장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전주지법 형사7단독 김준희 판사는 17일 국가보안법 위반 회합·통신 등 혐의로 기소된 방 전 부회장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같은 사건으로 기소된 쌍방울그룹 전 임원 A씨에게도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을, 다른 공범 2명에게는 징역 1년 6개월과 집행유예 3년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선고 이유에서 피고인들이 북한 공작원과 접촉한 점을 엄중히 지적했다. 김 판사는 "피고인들은 대한민국의 존립이나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고려하지 않고 개인 이익만 바라보며 범행했다"며 "게다가 대상자가 북한 공작원임을 알면서도 만나거나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밝혔다. 국가보안법이 금지하는 회합·통신의 고의성이 분명했다는 판단이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반성과 자백 등을 양형에서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 김 판사는 "피고인들이 범행을 반성하면서 자백하고 있고 북한 체제에 적극적으로 동조해 범행에 이르지는 않은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북한 체제 선전·선동이나 조직 가담 수준으로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다는 점을 감안했다는 취지다.
검찰에 따르면 방 전 부회장 등은 2019년 6월부터 11월까지 중국 내 한 호텔 등에서 북한 정찰총국 출신 대남공작원 리호남을 만나거나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인터넷 도박사이트 해킹 프로그램 제작을 모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해킹툴 제작 과정 전반에 기획과 논의를 함께한 것으로 조사됐다.
수사 과정에서 방 전 부회장은 이미 2018년부터 쌍방울그룹의 대북사업을 논의하기 위해 리호남을 여러 차례 접촉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국은 방 전 부회장이 이 과정에서 리호남이 북한 정찰총국 소속 대남공작원이라는 점을 인지한 것으로 파악했다. 재판부도 이 같은 사실관계를 전제로 유죄 판단을 내렸다.
리호남은 쌍방울그룹의 800만 달러 대북 송금 사건에서 핵심 역할을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검찰은 리호남이 송금 구조 설계와 실행 과정 전반에 깊게 관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쌍방울그룹과 북한 측 사이에서 자금 전달 통로를 제공하고 협의 창구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방 전 부회장은 이번 사건에서 직접 해킹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하지는 않은 것으로 인정됐다. 그러나 공범들과 리호남의 접촉을 주선하고 회합 장소를 조율하는 등 실질적으로 접촉을 뒷받침한 혐의가 적용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역할이 핵심 공범들보다 제한적이지만, 국가보안법이 엄격히 금지하는 북한 공작원과의 회합·통신을 도운 부분의 책임이 가볍지 않다고 판단했다.
선고에 앞서 법원에 출석한 방 전 부회장은 언론의 거듭된 질문에도 일체의 답변을 피했다. 취재진이 "리호남이 공작원인 걸 알고도 접촉했느냐",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주장한 검찰청 연어 술 파티에 있었느냐"고 묻자 그는 굳은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법정으로 향했다. 대북 송금 수사 과정에서 불거진 검찰청 술자리 의혹과 관련한 추가 설명도 내놓지 않았다.
방 전 부회장은 이번 국가보안법 사건과는 별도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게 억대 뇌물을 제공하고 대북 송금을 공모한 혐의로 이미 유죄가 확정된 상태다. 그는 지난 6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확정받았다. 이 판결은 쌍방울그룹과 경기도의 대북 사업 추진 과정에 불법 자금이 동원됐다는 사법부의 최종 판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전 부지사는 같은 사건에서 특가법상 뇌물 및 외국환거래법 위반으로 징역 7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고, 이를 합산한 징역 7년 8개월과 벌금 2억5천만 원, 추징금 3억2천595만 원이 확정됐다. 지방정부의 대북 교류 사업과 민간 기업의 이해관계가 얽힌 대표적 정치·경제 사건으로 남게 됐다.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둘러싼 수사와도 연결돼 여야 정치 공방의 핵심 소재가 돼 왔다. 여당은 북한과의 불법 자금 거래를 둘러싼 야권 책임론을 제기해 왔고, 야당은 검찰의 편파 수사와 정치적 기획 수사라는 프레임으로 맞서며 정면 충돌해 왔다. 이번 국가보안법 사건 1심 판결이 대북 송금 수사 전반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법조계에서는 방 전 부회장에게 연이어 집행유예가 선고된 점을 두고 추가 구속 수사나 재판 부담은 줄어들었지만, 대북 송금·북한 공작원 접촉 구조에 대한 법원의 유죄 판단이 분명히 축적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수사당국이 리호남 등 북한 측 인물과의 연계 정황을 토대로 남은 관련 수사에 속도를 낼 가능성을 점치는 시각도 있다.
정치권은 쌍방울 대북 송금과 북한 공작원 접촉 사건을 두고 향후에도 공방을 이어갈 전망이다. 검찰과 법원에서 관련 사건 판결이 잇따르는 만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나 향후 상임위 질의에서도 책임 공방과 제도 보완 논의가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향후 회기에서 대북 자금 거래 통제 장치와 국가보안법 적용 범위에 대한 본격 논의에 나설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