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바이오

“AI는 어떻게 세상을 보는가”…브런치북, IT·바이오 감성 담았다

박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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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인공지능과 디지털 플랫폼이 콘텐츠 유통을 바꾸는 가운데, 카카오가 운영하는 콘텐츠 퍼블리싱 플랫폼 브런치의 종이책 공모 프로젝트가 AI와 UX 등 기술 소재를 전면에 내세운 수상작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기술 전문서를 넘어, 인공지능과 사용자 경험을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풀어낸 브런치 작가들의 글이 출판 기회를 얻으면서 IT·바이오 인접 분야의 대중 서사 확산이 가속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결과를 창작 생태계와 기술 문화 사이의 접점을 넓히는 실험으로 보고 있다.

 

카카오는 17일 제13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작 10편을 발표했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는 브런치가 2015년부터 운영 중인 종이책 출판 공모전으로, 디지털 글을 선별해 오프라인 출판까지 연결하는 것이 특징이다. 8월부터 약 두 달간 진행된 이번 공모에는 약 1만4000편의 작품이 접수돼 역대 최다 기록을 다시 썼고, 약 1400대1에 달하는 경쟁률을 통과한 10편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수상작은 소설 부문 2편, 종합 부문 8편으로 나뉜다. 소설 부문에서는 스릴러 야수의 산과 힐링 소설 파리에서의 보물찾기가 각각 대상을 받았다. 지난해 12회에서 신설된 소설 부문은 이번에 응모 수가 전년 대비 14퍼센트 증가해 스토리 콘텐츠 수요가 커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종합 부문에서는 곤충 생태, 음악방송 제작 현장, 지자체 홍보, 단기 노동 경험 등 생활 밀착형 소재와 더불어 인공지능과 UX 설계 등 IT 산업과 맞닿은 주제가 두드러졌다.

 

특히 AI는 어떻게 세상을 보는가와 UX 사용자 도감은 기술을 다루면서도 인문학적 해설을 결합한 점에서 주목된다. AI는 어떻게 세상을 보는가는 건축가의 관점에서 인공지능 인식 방식을 풀어낸 작품으로, 기계 학습과 컴퓨터 비전 같은 개념을 실제 도시와 공간을 읽는 감각에 빗대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UX 사용자 도감은 디지털 서비스 기획과 사용자 경험 설계 과정을, 실제 사용자 유형을 분류하고 도감처럼 정리하는 방식으로 풀어낸다. 개발자와 디자이너 중심으로 논의되던 UX 개념을 비전공자도 공감할 수 있는 생활 언어로 번역한 시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IT 기업과 플랫폼 업계에서는 이런 류의 콘텐츠를 통해 복잡한 기술과 산업 구조가 풀어서 공유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인공지능 모델의 작동 원리, 사용자 행동 데이터 분석 같은 요소는 기술 문서로만 소통될 경우 전문가 집단에 갇히기 쉽다. 반면 브런치 작가들이 내놓은 수상작은 개인 경험과 서사를 입혀 기술이 일상과 맞닿는 지점을 보여준다. 이는 기업의 AI 도입과 디지털 서비스 기획에서 실제 사용자 수용성을 높이는 간접 교육 효과로 이어질 여지도 있다.

 

국내외 출판 시장에서도 AI와 UX를 다루는 책은 꾸준히 발간되고 있다. 다만 해외에서는 연구자나 엔지니어 출신 저자가 학술적 설명과 산업 적용 사례를 중점적으로 정리하는 반면, 이번 브런치북 대상작들은 비전문 독자를 겨냥한 에세이형 구성이 특징으로 보인다. 기술 스펙이나 알고리즘 구조를 상세히 다루기보다, 인공지능이 도시 풍경을 어떻게 재해석하는지, 앱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감정이 어떻게 설계에 반영되는지 같은 정성적 서술을 통해 기술과 생활의 경계를 허무는 접근이다.

 

수상작 중 회사 대신, 명품 포장 알바 같은 작품도 플랫폼 노동과 단기 아르바이트 경험을 소재로 삼았다. 이는 전자상거래 성장과 물류 자동화, 플랫폼 기반 노동 구조 재편과도 연결된다. 물류 자동 분류 시스템이나 주문 예측 알고리즘이 시장을 바꾸더라도 마지막 포장과 배송 단계에서 인간 노동이 맡는 역할, 그 과정에서의 감정과 노동 환경이 콘텐츠로 조명되는 셈이다. 디지털 전환이 확산될수록 알고리즘 뒤편의 사람 이야기에 대한 수요도 함께 커진다는 점을 시사한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는 디지털 글쓰기와 종이책 출판을 연결하는 구조를 통해, IT·바이오 및 다양한 산업 분야의 현장 경험을 가진 개인이 자신의 전문성을 서사로 전환할 수 있는 통로로 활용되고 있다. 브런치에 게시된 글이 일정 분량과 완성도를 갖춰 공모에 응모되면, 출판사가 편집과 마케팅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출판계에서는 이런 구조가 전통적인 기획·집필·출간의 순서를 일부 뒤집어, 먼저 온라인에서 독자 반응을 확인한 뒤 종이책으로 확장하는 테스트베드 역할을 한다고 본다.

 

카카오는 이번 수상작 10편에 총 5000만 원의 상금을 제공하고, 출간과 마케팅을 지원한다. 수상작들은 브런치 공식 계정과 별도 프로모션 페이지에서 소개되며, 2025년 7월 종이책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디지털 플랫폼에서 먼저 독자를 확보한 뒤 오프라인 서점과 도서관으로 유통이 확대되면, AI·UX 등 기술 주제를 다룬 에세이와 논픽션이 보다 넓은 독자층과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브런치 관계자는 올해 응모작에 대해 자신만의 세계관을 성실히 구축한 글이 두드러졌다고 설명했다. 완성도뿐 아니라 새로운 소재에 대한 실험과 시도가 인상적이었다는 평가도 덧붙였다. 특히 인공지능, 사용자 경험, 도시와 기술 등 융합 주제를 다룬 글에서 전문성과 독창성이 동시에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브런치는 올해 서비스 10주년을 맞았다. 9월 기준 등록 작가는 약 9만5000명, 누적 게시글은 800만 건을 넘어섰고, 브런치 원작 기반 도서도 1만 권을 돌파했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의 누적 응모작은 약 7만7000편이며, 지금까지 346명의 수상자와 369편의 수상작이 나왔다. 창작자 지원 누적 금액은 6억 원을 상회한다. 디지털 글쓰기를 통해 성장한 작가들이 IT·바이오를 포함한 다양한 산업의 변화를 글로 기록하고 해석하는 흐름이 지속될 경우, 대중이 접하는 기술 담론의 폭도 넓어질 가능성이 있다.

 

콘텐츠 업계에서는 플랫폼이 이런 실험을 얼마나 일관되게 지원하고, 수상작이 실제 시장에서 어떤 독자층을 확보할지가 관전 포인트로 거론된다. 기술을 둘러싼 설명과 논쟁이 전문가·정책 중심에서 이용자·창작자 중심으로 확장되는 흐름 속에서, 브런치북 같은 프로젝트가 IT·바이오 산업 변화와 문화적 수용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산업계는 지켜보고 있다.

박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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