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5칩으로 초현실 구현”…애플 비전 프로, 무게와 가격이 가른 상용화 분기점
공간 컴퓨팅 헤드셋이 개인용 컴퓨팅의 다음 무대로 부상하는 가운데, 애플이 M5 칩을 탑재한 2세대급 공간 컴퓨터 애플 비전 프로 M5 모델을 국내에 출시하며 시장 경쟁 구도를 다시 흔들고 있다. 압도적인 그래픽 품질과 시선·손동작 기반 인터페이스로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흐리지만, 800그램에 육박하는 무게와 약 500만원 수준의 가격은 아직까지 대중 시장 확산에 제동을 거는 요인으로 평가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제품을 두고 고성능 공간 컴퓨팅과 실제 상용화 사이의 간극을 드러낸 상징적 사례로 보는 시각도 나온다.
애플 비전 프로 M5 모델은 지난달 28일 국내 출시 이후, M5 칩과 마이크로 OLED 디스플레이 조합으로 시각적 완성도를 크게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존 M2 기반 1세대 모델 대비 연산 성능을 대폭 높여 머리 움직임에 따른 화면 끊김과 잔상을 사실상 제거했고, 4K TV 두 대에 해당하는 해상도를 손톱 크기 면적 안에 구현한 마이크로 OLED 패널로 ‘스크린 도어’로 불리는 픽셀 격자 현상도 거의 느껴지지 않게 했다. 특히 외부 카메라가 현실 영상을 실시간으로 헤드셋 내부로 전달하는 패스스루 기능은 마치 창문을 통해 실세계를 그대로 보는 수준에 근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술 구현 방식 측면에서 가장 주목받는 부분은 인터페이스다. 애플은 별도의 컨트롤러 없이 시선 추적과 손 제스처 인식을 결합한 조작 방식을 전면에 내세운다. 사용자가 실행하고 싶은 앱 아이콘을 눈으로 바라본 뒤 엄지와 검지를 가볍게 맞대면 선택이 이뤄지는 구조로, 시선 추적 정확도가 높아 허공의 작은 닫기 버튼도 비교적 자연스럽게 조작할 수 있다. 이러한 인터페이스는 손에 컨트롤러를 쥐어야 하는 기존 VR 장치 대비 몰입감과 직관성을 동시에 끌어올렸다는 평가다.
M5 칩은 그래픽 렌더링과 센서 융합 처리 속도에서 전세대보다 폭넓은 개선을 보인다. 고속 머리 회전에 따른 화면 전환 상황에서도 지연과 왜곡이 체감되지 않을 정도로 줄어들면서, 장시간 사용 시 멀미를 유발하던 가상현실 특유의 이질감이 감소했다는 사용자 후기가 이어진다. 애플은 이를 바탕으로 공간 컴퓨팅이라는 개념을 단순한 시연 단계가 아닌 실사용 가능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대표적인 체험 콘텐츠로는 애플이 자체 제공하는 환경 전환 앱과 공룡 체험, 스포츠 중계 등이 꼽힌다. 환경 기능을 통해 사용자는 실제 자신의 방을 기반으로 시간과 공간을 변환한 가상 환경을 불러와 몰입형 체험을 즐길 수 있다. 공룡 체험 앱에서는 실내 공간 안으로 공룡이 걸어 들어오는 연출, 손을 내밀면 나비가 손가락에 앉는 상호작용, 사용자를 인식해 눈을 맞추는 거대 공룡의 동작 등으로 현실과 가상이 섞인 초현실 경험을 제공한다. 3D 사운드와 결합된 이 연출은 가상 콘텐츠를 단순 시청하는 수준을 넘어, 사용자가 콘텐츠 내부에 존재하는 듯한 감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돼 있다.
스포츠 분야에서도 애플은 미국 메이저리그사커와 협업해 경기장 내 특정 위치에 사용자를 ‘앉힌’ 듯한 3D 중계 경험을 제공한다. 골대 바로 뒤 시점에서 슛이 날아오는 장면, 우승 세리머니를 선수들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구조 등은 실시간 현장감 구현 수준을 끌어올린 사례로 꼽힌다. 이는 공간 컴퓨팅 기술이 향후 스포츠, 공연, 교육 등 라이브 콘텐츠 산업의 수익 모델을 다변화하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생산성 측면에서는 여러 개의 초고해상도 모니터를 대체할 수 있는 작업 환경이 강점으로 부각된다. M5 비전 프로에 새로 강화된 울트라 와이드 기능을 이용하면, 실제로는 좁은 방 안에서도 사용자의 시야 전체를 가로지르는 대형 가상 화면을 띄우고 여러 개의 앱 창을 동시에 배치해 작업할 수 있다. 5K 모니터 두 대를 나란히 놓은 듯한 가상 데스크톱 구성은 디자이너, 개발자, 크리에이터 등 멀티 윈도우 활용도가 높은 전문 직군에게 특히 매력적인 요소로 평가된다. 물리적인 모니터 수를 늘리지 않고도 필요한 만큼의 가상 화면을 확장할 수 있어, 향후 기업용·전문직 시장에서 도입 가능성이 거론된다.
다만 콘텐츠 생태계 측면에서 한계도 뚜렷하다. 대표적인 글로벌 동영상 플랫폼인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여전히 비전 프로 전용 앱을 제공하지 않고 있어, 사용자는 사파리 브라우저를 통해 웹 기반으로 접속해 시청해야 한다. 애플 TV 플러스 전용 공간 콘텐츠나 일부 3D 영화는 뛰어난 몰입감을 제공하지만, 헤드셋의 공간 컴퓨팅 기능을 충분히 활용하는 전용 콘텐츠 풀은 아직 제한적이다. 경쟁사 디바이스들이 게임과 소셜 VR 중심 생태계를 넓혀가는 상황에서, 비전 프로의 고성능 하드웨어가 활용될 수 있는 앱이 부족한 점은 초기 시장 확산의 걸림돌로 지목된다.
하드웨어 설계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듀얼 니트 밴드 채택이다. 머리 뒤만 지탱하던 전작과 달리 머리 윗부분까지 감싸는 구조로 변경해 무게를 분산하려는 시도가 이뤄졌다. 그럼에도 제품 무게가 약 750에서 800그램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장시간 착용 시 얼굴과 목에 가해지는 압박감은 여전히 부담이라는 평가가 많다. 착용 중 기기 흔들림을 줄이기 위해 밴드를 강하게 조일수록 눈 주변과 광대 부위가 눌리는 감각이 커지고, 30분 내외 사용만으로도 피로감과 약한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외장 배터리팩을 케이블로 연결하는 구조도 사용자 경험을 제약하는 요소로 꼽힌다. 주머니나 옆에 둔 배터리팩과 본체 사이에 항상 선이 연결돼 있어, 실내 이동 시 케이블이 걸리거나 당겨지는 상황을 신경 써야 한다. 이는 무선 일체형을 지향하는 메타 퀘스트 등 경쟁 제품과 비교할 때, 성능과 발열 관리에는 유리하지만 자유로운 이동성과 사용 편의성에서는 불리한 설계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외 시장에서의 경쟁 구도를 보면, 애플 비전 프로 M5는 명확하게 프리미엄 하이엔드 세그먼트에 위치한다. 메타 퀘스트 시리즈, 삼성 갤럭시 XR 등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과 가벼운 무게로 대중 시장 확대를 노리는 반면, 비전 프로는 최고 수준의 디스플레이와 칩 성능, 애플 생태계 연동을 앞세워 고가 전문 장비에 가까운 포지셔닝을 택했다. 이로 인해 소비자 입장에서는 OTT 시청이나 일반 게임 플레이를 위해 수백만원을 지불할 유인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산업용·전문가용·크리에이터용 등 특정 타깃 시장이 우선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정책·규제 측면에서는 공간 컴퓨팅 기기가 본격적으로 의료, 교육, 국방, 산업 안전 분야 등에 사용될 경우, 시야 차단과 주의 분산에 따른 안전 문제, 장시간 착용에 따른 건강 영향에 대한 기준 마련이 필요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VR·AR 기기 사용과 관련한 시야 피로, 멀미, 어린이 사용 제한 가이드라인이 논의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향후 교육 현장이나 공공 서비스에 공간 컴퓨팅 기기를 도입할 경우 유사한 기준과 가이드라인 정립이 요구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애플 비전 프로 M5가 현존하는 시각적 가상현실 구현 기술의 최고 수준을 보여주면서도, 하드웨어 무게와 가격, 콘텐츠 생태계의 한계가 공간 컴퓨팅의 대중화를 지연시키는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향후 경량화된 차세대 모델이 출시되고, OTT, 게임, 생산성, 교육·의료 등 각 분야에서 공간 전용 콘텐츠가 늘어날수록 시장 구조도 재편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산업계는 초고성능 공간 컴퓨팅 기기가 실제 거실과 사무실로 파고들지, 아니면 고가의 틈새형 장비로 남게 될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