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허위조작정보 손배 최대 5배"…민주당·조국혁신당 표결 처리, 국민의힘 "언론 재갈 악법"

이도윤 기자
입력

허위조작정보를 둘러싼 입장 차이가 국회에서 정면 충돌했다. 허위·조작 정보 유포에 대한 손해배상을 최대 5배까지 물릴 수 있도록 한 이른바 허위조작정보근절법이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주도로 소관 상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하면서다. 언론단체와 야당은 언론 자유 위축을 우려하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법안소위원회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회의를 열고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불법 또는 허위정보를 고의·의도적으로 유포해 타인이나 공공의 법익을 침해한 자에게 증명되거나 인정된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지우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의 반대에도 표결을 통해 안건을 처리했다. 법안소위는 더불어민주당 의원 5명, 국민의힘 의원 4명, 조국혁신당 의원 1명으로 구성돼 있어 더불어민주당이 단독으로는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다. 앞서 8일 열린 소위에서는 조국혁신당이 국민의힘과 함께 반대하면서 법안이 제동이 걸렸지만, 이날 표결에서는 혁신당이 입장을 바꾸며 찬성 표를 던졌다.

 

조국혁신당 이해민 의원은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표결 태도 변경 배경을 설명했다. 이 의원은 "허위조작뉴스는 근절하면서 권력자가 손해배상 청구를 권력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을 방안을 논의했다"고 말한 뒤 "더불어민주당이 전략적 봉쇄소송 방지 특칙을 제안해 수용했다"고 밝혔다. 그는 허위조작정보 규제 필요성과 함께, 소송 남용 방지 장치 도입을 핵심 고려사항으로 제시했다.

 

개정안에는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를 법원이 조기에 각하할 수 있도록 하는 전략적 봉쇄소송 방지에 관한 특칙이 포함됐다. 전략적 봉쇄소송은 사회적 비판을 위축시키려고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법원이 일정 요건 아래에서 초기 심리 단계에서 소송을 차단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담긴 셈이다. 여당과 혁신당은 이 특칙이 권력자와 재력가의 소송 남용에 제동을 거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단체와 야당이 요구해온 권력자 청구권 제한 조항은 법안에 반영되지 않았다. 언론단체들은 정치인과 공직자, 대기업 임원과 대주주 등 권력자의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을 국회에 전달해 왔다. 공적 인물에 대한 비판과 감시를 보호하려면 권력자에게는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를 허용하지 않거나 대폭 제한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럼에도 개정안에는 이러한 권력자 제한 규정이 빠져 있어 향후 논란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법안 통과 직후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간사인 최형두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선진 민주국가 어디에서도 없는 악법"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언론이 재력가, 권력자 비리 보도를 못 하도록 겁먹게 하는 것이고, 언론 자유와 민주 시민사회 원칙이 퇴행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허위·조작 정보 규제를 명분으로 언론을 위축시키는 결과가 빚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더불어민주당은 허위조작정보에 따른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당 지도부와 과방위 소속 의원들은 온라인 공간과 사회관계망서비스를 중심으로 악의적 허위정보가 빠르게 확산되고, 정치적 목적을 띤 공격성 콘텐츠가 반복 생산되는 현실을 거론하며, 재발 방지를 위해 강력한 손해배상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또 전략적 봉쇄소송 방지 특칙이 포함된 만큼 정당한 비판과 탐사보도가 위축될 것이라는 야당과 언론단체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이날 법안소위 처리로 허위조작정보근절법은 과방위 전체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 본회의 심사 절차를 남겨두게 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오후 과방위 전체회의를 열어 개정안을 상정하고 통과를 추진할 방침이다. 국민의힘은 전체회의와 이후 법제사법위원회 단계에서 조항별 문제점을 부각하며 저지전에 나설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향후 논의 과정에서 언론단체와 시민사회단체의 비판 목소리도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 허위·조작 정보 근절이라는 명분과 언론 자유 보장이라는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상한과 권력자 청구권 범위를 둘러싼 공방이 계속될 전망이다. 국회는 과방위 전체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 심사 과정에서 세부 쟁점을 놓고 추가 조율에 나설 것으로 보이며, 정치권은 허위조작정보근절법을 매개로 격렬한 논쟁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도윤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허위조작정보근절법#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