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기증 데이터 플랫폼"…기증원, 이식 성공률 높여 생명연결 가속
뇌사 장기기증 데이터를 정교하게 관리하는 디지털 플랫폼이 국내 이식 의료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이 구축한 정보시스템은 기증자·대기자 정보를 실시간 연동해 최적 수혜자를 찾는 데 활용되며, 극심한 장기 부족 속에서 의료·바이오 인프라로서 파급력이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데이터 기반 장기 배분 체계가 향후 정밀의료와 결합될 경우 생존율과 이식 효율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10월 22일 경남 창원경상국립대학교병원에서 40대 여성 최경미 씨가 뇌사 장기기증을 통해 4명의 생명을 살리고, 인체 조직기증으로 100여 명 환자의 기능 회복에 기여했다고 밝혔다. 기증 과정은 기증원의 전산 시스템을 통해 장기 상태, 혈액형, 체격, 의료적 적합성, 긴급도 등을 종합 분석해 수혜자를 선정하는 표준 절차에 따라 진행됐다. 해당 시스템은 전국 이식기관과 연동돼 있어, 이식 가능 시간이라는 물리적 제약 안에서 배분 의사결정을 지원했다.

뇌사 장기기증은 심장과 간, 양측 신장 등 필수 장기를 생물학적 사망 직전 상태에서 분리해 다른 환자에게 이식하는 고난도 의료 기술이다. 이 과정에서 혈류 유지, 장기 손상 최소화, 면역학적 적합성 확보가 핵심인데, 국내에서는 전자의무기록과 이식 데이터베이스를 연계한 디지털 모니터링으로 장기 상태를 실시간 관찰하고 있다. 특히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기증자 혈액검사, 영상검사, 감염 여부, 과거 병력까지 전산화해 이식 금기 요인을 사전에 필터링하고, 의료진에게 위험도를 수치화된 지표로 제공하는 구조를 운용 중이다.
이번 사례에서 최경미 씨는 가족 동의에 따라 심장, 간, 신장 두 개를 기증해 4명에게 새 장기를 전달했다. 동시에 뼈, 인대, 피부, 각막 등 인체 조직도 기증돼, 정형외과 재건 수술, 화상·외상 환자 치료, 실명 위험 환자 시력 회복 등에 활용될 예정이다. 조직기증은 위급한 생명 연장보다는 삶의 질을 회복시키는 방향으로 쓰이는 만큼, 수혜자 풀과 수요 규모가 더 크다. 이 때문에 조직기증 데이터 관리는 장기이식과는 또 다른 의료 공급망으로 간주되며, 병원·조직은행·제조기관 간 디지털 연계가 필수로 여겨진다.
현재 한국의 장기·조직 기증 관리는 사실상 국가 단일 허브 구조에 가깝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보건복지부 지정 기관으로서 전국 뇌사 추정자 신고, 기증자 발굴, 뇌사 판정, 기증 과정, 사후 관리까지 통합 관제한다. 이 과정에서 축적되는 기증·이식 데이터는 연령, 질환, 장기별 생존율, 합병증 발생률 같은 임상 정보를 포함해, 향후 인공지능 기반 예후 예측 모델 개발의 토대가 되는 자원으로 평가된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이미 장기이식 예측 알고리즘이 도입돼 특정 조건에서 이식 후 5년 생존율을 기존 계산 방식보다 더 정확하게 산출하고 있어, 국내에서도 유사한 디지털 헬스 기술 도입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장기이식 분야에 IT·바이오 융합 경쟁이 본격화된 상황이다. 미국의 UNOS는 전국 이식 네트워크를 클라우드 환경으로 이전해 매칭 알고리즘을 고도화하고 있고, 유럽 일부 국가는 유전체 정보와 면역형 검사 결과를 통합해 이식 거부반응 위험도를 사전에 예측하는 시스템 실증을 진행 중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단일 건강보험 체계와 전국 이식 데이터 통합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어, 알고리즘 기반 장기 배분 로직을 설계하기에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장기·조직 기증 데이터는 고위험도 개인정보로 분류돼, 활용 과정에서 강력한 보호 체계가 요구된다. 국내에서는 개인정보보호법과 생명윤리법,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이 함께 적용되며,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인체 조직의 품질·안전 기준을 관리한다. 빅데이터 분석이나 인공지능 알고리즘 개발에 기증자 정보를 사용할 경우, 비식별화 조치와 연구윤리 심의, 정보주체 동의 구조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가 핵심 쟁점으로 거론된다. 유럽연합이 추진 중인 AI 규제 체계처럼, 의료 AI를 고위험 영역으로 분류해 설명 가능성과 책임 주체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산업계에서는 장기이식 데이터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정밀의료·바이오 사업 기회도 조심스럽게 거론된다. 장기 상태를 디지털 트윈처럼 모사하는 시뮬레이션, 환자별 거부반응 예측을 위한 면역 유전체 분석, 조직이식 재료의 첨단 바이오 소재화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상업적 활용과 공공성 간 균형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아직 초기 단계로, 기증자의 숭고한 결정이 의료 산업 논리와 충돌하지 않도록 투명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이번 사례에서 최경미 씨는 생전 영화나 드라마에서 장기기증 장면을 접할 때마다 가족에게 기증 의사를 밝혀온 것으로 전해졌다. 가족들은 이를 고인의 마지막 뜻으로 받아들이고 장기·조직 기증에 동의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 관계자는 기증자 가족 지원 프로그램과 추모 행사를 통해 기증 결정이 남긴 정서적 상처를 완화하고, 동시에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는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삼열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원장은 삶의 끝에서 다른 생명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내준 기증자와 유가족의 사랑에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하며, 기증자와 유가족의 마음이 데이터와 의료기술을 통해 더 많은 생명을 살리는 희망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조직 차원의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업계는 앞으로 장기기증 시스템이 디지털 헬스케어와 정밀의료 기술을 흡수할수록, 공공 데이터 인프라와 윤리적 통제가 한국 이식 의료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 조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