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관광 지역확산 시동…고양 중심 협의체 출범
의료관광이 특정 대형병원과 수도권 도심에 치우친 구조를 바꾸기 위한 정부와 지자체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외국인 환자가 한국을 찾는 규모는 빠르게 회복됐지만, 내국인 의료 접근성과 지역 병원 경쟁력 강화라는 과제가 동시에 제기되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지역 기반 의료관광 모델이 자리 잡을 경우 의료 서비스와 관광, 숙박, 교통, 디지털 헬스케어까지 아우르는 융합 산업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이번 협의체 출범을 의료관광 공간 구조 개편의 첫 시험대라는 평가도 뒤따른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12일 경기 고양특례시 소노캄 고양에서 의료관광 지역협의체 첫 회의를 열고 서울에 집중된 의료관광 수요를 분산하기 위한 전략 논의를 진행했다. 회의에는 문체부와 관광공사, 경기관광공사, 고양시 소재 종합병원, 의료관광 유치 업체 등 관계자 약 40명이 참석해 지역 의료기관과 중개업계가 함께 참여하는 협력 구조를 공식화했다.

한국관광공사는 그동안 추진해 온 의료관광 활성화 사업의 주요 성과를 공유하고, 외국인 환자 유치 현황과 문제점을 짚었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의료관광객은 117만 명 수준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약 100만 명, 비중으로는 85%가 서울에 몰려 있어 특정 지역 편중 현상이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한국외국어대 투어리즘 웰니스학부 변정우 석좌교수는 지역 의료관광 활성화 전략을 제안했다. 변 교수는 각 지역이 보유한 의료 기술과 진료 분야를 정밀 분석해 지역특화 의료 서비스를 체계적으로 발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상급종합병원이 밀집한 고양시는 암과 심뇌혈관 질환, 고난도 수술 분야, 해양 치유 자원을 보유한 일부 도시는 재활과 만성질환 관리 등으로 전문화하는 방식이다. 동시에 외국인 환자의 비자 발급, 통역 지원, 입국 절차 간소화 등 입국 편의 제고 방안도 병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참석자들은 의료관광 경쟁력을 좌우할 기반 인프라 구축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교통과 숙박, 통역 인력, 다국어 안내 시스템은 물론 디지털 사전문진과 원격 사후관리 같은 서비스 연계를 어떻게 지역 단위에서 묶을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특히 의료 광고 시행과 관련한 제도 개선 필요성이 거론됐다. 현행 규제가 의료기관의 해외 마케팅과 플랫폼을 통한 정보 제공 범위를 제한해, 안전한 정보 제공과 과잉 광고 방지 사이에서 합리적 균형점을 재설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외국인 환자의 진료 과정을 안내하고 예약, 보험, 통역, 사후관리까지 맡는 의료 코디네이터의 비자 승인 문제도 현장의 핵심 이슈로 다뤄졌다. 현재 일부 국가 출신 인력의 경우 체류 자격과 업무 범위가 불명확해 우수 인력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업계는 의료 코디네이터를 정식 전문 인력으로 인정하는 제도 설계와 체류 자격 명확화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지역의 입법 지원도 가세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이기헌 의원실 관계자는 협의체 회의에 참석해 인천과 김포 등 국제공항과 인접하고 상급종합병원이 밀집한 고양시의 입지를 언급하며 의료관광 거점 도시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정책·예산 측면에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공항 접근성과 2차, 3차 의료 인프라가 결합될 경우 단기 체류형 검진 패키지부터 장기 치료 프로그램까지 다양한 상품 기획이 가능하다는 분석도 뒤따랐다.
한국관광공사 서영충 사장직무대행은 서울에 쏠린 의료관광 수요를 지적하며 인프라를 갖춘 고양시, 부산, 인천을 중심으로 협의체를 구성해 외국인 유치를 확대하고 지역 간 균형 발전을 도모하겠다고 밝혔다. 부산과 인천은 항만과 공항, 관광 벨트를 두루 보유하고 있고, 고양시는 수도권 서북부의 상급종합병원 클러스터 역할을 할 수 있어 각각 다른 의료관광 모델을 시험해볼 수 있는 지역으로 꼽힌다.
업계 전문가들은 지역 의료관광 전략이 성공하려면 단기적으로는 병원과 여행사 중심의 환자 유치에서 벗어나 공항, 호텔, IT 서비스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플랫폼형 생태계가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진료 예약과 결제, 사전 상담, 디지털 사후관리까지를 아우르는 통합 시스템을 구축해 서비스 품질을 표준화하지 못하면 서울 쏠림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편 주요 경쟁국들은 국가 차원에서 의료관광 정책을 정교하게 설계하고 있다. 태국과 싱가포르는 허브 병원 중심의 고급 의료관광, 일본은 온천과 재활·웰니스 연계 프로그램, 중동 국가들은 첨단 병원 클러스터 조성에 집중하며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한국은 암, 성형, 검진 분야 경쟁력과 IT 인프라를 강점으로 평가받지만, 환자 맞춤 정보 제공과 지역 브랜드 구축에서는 여전히 과제가 많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이번 의료관광 지역협의체가 단발성 회의에 그치지 않고 정례 협의와 데이터 공유, 규제 개선 건의까지 이어질 경우 지역 의료기관의 수익 구조 다변화와 바이오·헬스케어 산업 확장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동시에 의료 상업화에 대한 우려와 지역 의료 공백 문제를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산업계는 새로 출범한 협의체가 서울 중심 구조를 넘어서는 의료관광 모델을 만들어 실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