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저희 나라 제일 듣기 싫다"…이재명 대통령, 언어 순화·외래어 남용 정면 비판

박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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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둘러싼 갈등이 정치권 한복판으로 들어왔다. 이재명 대통령이 정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언어 순화와 외래어 남용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하며 공공 영역 언어 사용 관행을 바꾸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12일 오후 대통령실에서 열린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한글 사용 실태를 언급하며 "제가 정말 제일 듣기 싫은 게 저희 나라라는 말"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국민끼리 이야기하면서 우리 나라라고 하면 되는데, 왜 스스로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저희 나라라고 하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저희라는 표현의 의미부터 짚었다. 이 대통령은 "저희는 자신이 속한 집단 전체를 낮춰 상대를 높이는 표현"이라며 "같은 한국인끼리 말할 때 저희 나라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 나라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상에서 널리 쓰이는 대인배라는 말도 도마 위에 올렸다. 이 대통령은 "대인배라는 말도 하는데 이 역시 잘못이다"라고 말한 뒤 "소인배·시정잡배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배는 저잣거리의 건달이나 쌍놈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인배라는 단어는 훌륭한 나쁜 놈이라는 뜻이 된다"고 풀이하며 조어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사용되는 표현이라고 꼬집었다.  

 

언론과 방송, 공공기관까지 언어 감수성이 떨어져 있다고도 비판했다. 이 대통령은 "이런 단어들이 일상적으로 쓰여도 아무도 문제를 지적하지 않고 있다"며 "방송에서도 실수가 많이 보이고, 심지어 기자들조차도 이런 표현을 쓰더라"고 말했다. 그는 "최소한의 교양에 대한 문제다. 단체 공지를 해서 이런 일이 없어지도록 해야겠다"고 말해 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 마련 필요성을 시사했다.  

 

토론 과정에서는 한자 교육 문제로 논의가 확장됐다. 김언종 한국고전번역원 원장은 "대통령이 대인배 단어를 잘못 쓰는 일을 지적하셨는데, 이건 학생들이 한자를 배우지 않아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자 교육에 대한 특단의 조치를 해달라"고 건의했다.  

 

김 원장은 또 "학생들이 대통령 성함에 쓰이는 한자인 있을 재, 밝을 명도 잘 모른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그래서 죄명이라고 쓰는 사람이 있지 않느냐"며 웃음을 터뜨려 좌중의 냉랭한 분위기를 한 차례 누그러뜨렸다. 그러나 발언의 방향은 다시 언어 교육과 교양 교육의 필요성으로 돌아갔다.  

 

이 대통령은 한글을 두고 외래어를 남용하는 관행도 문제 삼았다. 그는 "멀쩡한 한글을 두고 왜 자꾸 쓸데없이 외래어를 사용하나. 공공영역에서 그러는 것은 더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외국말을 쓰면 유식해 보이느냐"고 반문하며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부터 언어 사용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같은 날 오전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서도 같은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미디어 리터러시 강화 방안을 보고하자 이 대통령은 "그냥 미디어 교육 강화라고 하면 되는데 굳이 리터러시 강화라고 하는 이유가 뭔가"라고 물었다.  

 

류신환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위원장 직무대행이 "리터러시란 문해력을 의미한다"고 설명했지만, 이 대통령은 수긍하지 않았다. 그는 "좋은 한글을 놔두고 공문에 꼭 리터러시라는 표현을 써야 되느냐는 점을 묻는 것"이라고 다시 짚었다. 사실상 정부 공식 문서에서부터 외래어 사용을 줄이고 한글 중심 표현으로 바꾸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교육부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등 관련 부처는 대통령의 지적을 계기로 공문서와 정책 명칭에서 사용하는 외래어, 신조어를 재점검할 가능성이 커졌다. 다만 학계와 교육계에서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개념어를 무리하게 한글로만 바꾸는 것은 오히려 소통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향후 대통령 언급이 국어기본법 개정, 공공언어 지침 강화, 학교 한자 교육 확대 논의로 이어질지 주목하고 있다. 정부는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를 중심으로 공공언어 사용 기준을 재정비하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며, 국회는 관련 법·제도 개선 필요성을 두고 다음 회기에서 본격 논의에 나설 계획이다.

박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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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대통령#한국고전번역원#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