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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억이 걸린 여섯 자리 숫자”…1200회 로또가 말해 준 일상의 작은 기대

조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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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토요일 밤 8시 35분이면 TV 앞에 앉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예전엔 ‘한방의 꿈’으로만 여겨졌지만, 지금은 한 주를 정리하는 작은 의식이자 일상의 소소한 기대가 됐다. 당첨번호를 확인하는 그 몇 분에 사람들은 피곤했던 한 주 대신 혹시 모를 행운을 떠올린다.

 

11월 29일 추첨된 제1200회 로또 6/45 당첨번호는 1, 2, 4, 16, 20, 32번이다. 보너스 번호는 45번이 함께 뽑혔다. 여섯 개 숫자를 모두 맞힌 1등 당첨자는 12명으로, 각자 23억 5,729만원의 당첨금을 받게 됐다. 세금을 뺀 실제 손에 쥐는 금액은 약 15억 7,939만원이다. 방송이 끝난 뒤에도 많은 이들이 휴대전화 앱과 홈페이지를 오가며 번호를 다시 확인하고, 가계부 대신 ‘당첨 후 계획’을 머릿속에서 조용히 그려본다.

제1200회 로또당첨번호
제1200회 로또당첨번호

5개 번호와 보너스 번호를 맞힌 2등은 80명으로, 1인당 5,893만원이 책정됐다. 세금을 제하면 약 4,596만원이 남는다. 5개 번호를 맞힌 3등은 3,584명으로 각 131만원, 4개 번호를 맞힌 4등 161,754명은 5만원, 3개 번호를 맞힌 5등 2,673,060명은 5,000원을 받는다. 월급날보다 더 자주 들여다보게 되는 추첨 결과 속에서 사람들은 당첨 여부와 상관없이 “이번엔 아까웠다”, “다음 주엔 번호를 바꿔 봐야겠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제1200회까지 로또 총판매금액은 84조 7,284억 2,526만원에 이른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매주 작은 금액을 내고 ‘가능성’이라는 이름의 시간을 사온 셈이다. 지금까지 누적 1등 당첨자는 9,999명. 2등 60,489명, 3등 2,283,804명이었다. 누적 1등 당첨금만 20조 1,808억 5,780만원, 2등과 3등은 각각 3조 3,626억 1,390만원, 3조 3,630억 2,844만원이 사람들의 손을 거쳐 갔다.

 

사람들은 이 거대한 숫자 속에서 나만의 공식을 찾으려 한다. 1200회차까지 가장 많이 출현한 번호를 일일이 적어보는 이들도 있다. 지금까지 가장 자주 뽑힌 번호는 34번이 204회로 1위다. 이어 12번 203회, 27번과 33번이 각각 202회, 13번 201회, 17번 199회로 뒤를 잇는다. 1, 3, 7, 20 같은 익숙한 번호들도 상위권에 자리 잡고 있다. 누군가는 “이쯤 되면 잘 나오는 번호가 정해져 있는 것 같다”고 느끼고, 또 다른 이는 “어차피 확률은 똑같다”며 생일과 기념일을 한결같이 적어낸다.

 

반대로 한동안 얼굴을 비추지 않은 번호를 찾는 사람도 많다. 최근 15회차(1117회부터 1132회) 1등 당첨번호를 분석하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숫자가 6개다. 18, 23, 29, 39, 42, 43번이 그 주인공이다. 커뮤니티에서는 “이제 슬슬 나올 때가 됐다”, “미출현 번호 몰아서 사 본다”는 글이 올라오며, 통계가 일종의 ‘심리게임’이 돼간다. 그러다 보니 번호를 고르는 일도 그 자체로 하나의 취미처럼 자리 잡는다.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을 ‘기대 소비’라고 부른다. 당첨 확률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매주 같은 금액을 투자하는 행위에는 단순한 도박 심리만이 아니라, 삶을 잠시 다른 각도로 상상해보는 욕구가 담겨 있다. 어느 심리상담사는 “복권을 산다는 건 숫자보다 내 삶의 가능성을 한 번쯤 떠올려 보는 일”이라며 “중요한 건 당첨 여부보다, 나에게 어떤 삶을 선물하고 싶은지 묻는 시간일 수 있다”고 표현했다.

 

실제로 기자가 주변에 물어보니 답은 비슷했다. 한 직장인은 “차나 집을 사겠다는 생각보다, 당첨되면 당장 회사 그만두고 일단 한 달은 푹 쉬고 싶다는 상상부터 한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30대는 “로또를 사는 날은 이상하게 하루가 조금 가벼워진다. 손에 쥔 종이 한 장이지만, 그날만큼은 내 통장 잔액과 상관없이 마음이 풍족해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댓글 반응에서도 “매주 5천원으로 한 주를 버틴다”, “당첨 안 돼도 확인하는 순간만큼은 설렌다”는 고백이 이어진다.

 

로또를 둘러싼 생활 리듬도 어느덧 익숙하다. 판매는 평일에는 시간 제한이 없지만, 추첨일인 토요일에는 오후 8시를 기준으로 마감되고 일요일 오전 6시까지는 잠시 멈춘다. 토요일 저녁, 편의점 창구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선 풍경이 반복되는 이유다. 추첨은 매주 토요일 오후 8시 35분, 생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진행된다. 번호가 하나씩 호명되는 그 짧은 순간 동안 거실, 편의점, 술자리, 야간 근무지 어디에서든 사람들의 시선은 같은 화면을 향한다.

 

당첨금에는 기한도 있다. 지급 개시일로부터 1년 안에 찾아야 하며, 마지막 날이 휴일이면 다음 영업일까지 여유가 생긴다. 그럼에도 종종 기한을 넘긴 당첨금이 뉴스에 오르내리면서 “내 종이 한 장도 혹시 어딘가에 사라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동행복권 홈페이지에서는 지난 당첨번호와 당첨 판매점 조회가 가능해, 사람들은 무심코 지나친 동네 가게를 다시 한 번 유심히 바라보곤 한다.

 

1등 평균 당첨금은 지금까지 20억 1,828만원이다. 최고 당첨금은 407억 2,295만원, 가장 적은 1등 당첨금도 4억 593만원이었다. 숫자로는 거대한 금액이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조금 다른 크기로 기억된다. 누군가에게는 빚을 갚을 수 있는 숨구멍이고, 누군가에게는 부모님에게 선물하고 싶은 집 한 채이자, 누군가에게는 ‘다음 생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기회’로 그려진다.

 

토요일 밤이 지나고 일요일 아침이 오면, 사람들은 다시 평소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대부분은 당첨이 아닌 꽝을 확인하고도 다음 주를 기약한다. 희박한 확률이라는 걸 알면서도 매주 같은 시간,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이유는 어쩌면 간단하다. 바쁘고 고단한 하루 속에서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순간이 돼주기 때문이다.

 

로또는 거대한 인생 역전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상을 버티게 하는 작은 의식에 가깝다. 숫자 여섯 개를 고르는 손끝에는 각자의 사정과 바람, 지친 마음이 조용히 얹힌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오늘도 누군가는 또 다른 6개의 숫자를 적으며, 자신이 원하는 삶의 모양을 조용히 그려본다.

조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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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동행복권#제1200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