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은 더 이상 근로자가 아니다”…액센추어, AI 전환 내세워 ‘재창조자’ 호칭 도입 파장
현지시각 기준 지난달 30일, 영국(UK) 런던에서 글로벌 컨설팅업체 액센추어(Accenture)가 자사 인력 정책과 관련한 상징적 조치를 단행한 것으로 보도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회사는 전 세계 약 80만명에 이르는 직원을 ‘근로자(worker)’가 아닌 ‘재창조자(reinventor)’로 부르며 AI 전환 전략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번 조치는 인공지능(AI) 확산과 컨설팅 업계 성장 둔화 속에서 기업 정체성과 인재 전략을 재정립하려는 시도라는 평가와 함께, 조직 내부 혼선과 신뢰 저하 우려도 동시에 불러일으키고 있다.
FT 보도에 따르면 액센추어는 최근 사내 인사(HR) 웹사이트 시험 버전에서 직원 호칭을 ‘근로자’에서 ‘재창조자’로 바꾸는 등 새로운 용어의 내부 사용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줄리 스위트 액센추어 최고경영자(CEO)는 AI 도입과 업무 프로세스 전환 국면에서 회사가 고객사의 ‘재창조 파트너’가 되겠다는 방향을 제시하며, 직원 역시 이러한 변화를 이끄는 ‘재창조자’로 정의했다. 그는 이 표현을 회사의 새로운 공식 내부 용어로 정착시키는 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액센추어는 지난 6월 전략, 컨설팅, 크리에이티브, 기술, 운영 등 기존 주요 사업 부문을 모두 ‘재창조 서비스(reinvention services)’라는 단일 사업부로 통합하는 대규모 조직 개편을 실시했다. 회사는 이번 개편을 통해 기업 고객이 AI 도구를 도입하고 업무를 재설계하는 과정에서 자사를 전사적 전환을 돕는 ‘재창조 서비스’ 제공자로 포지셔닝하겠다는 구상을 드러냈다. 이에 발맞춰 직원은 이러한 전환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재창조자’로 규정해, 내부 인력 구조와 대외 브랜드 이미지를 동시에 재정렬하려는 모습이다.
스위트 CEO는 최근 3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도 방향 전환을 강조했다. 그는 조직 개편 취지를 설명하며 여러 차례 직원들을 ‘재창조자’라고 지칭했고, 이 용어가 액센추어의 새로운 정체성을 반영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컨설팅 수요 둔화와 AI 기술 확산에 맞춰 직원 재교육이 필수라며, AI 시대에 필요한 역량을 갖추지 못하면 회사를 떠나야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업계에서는 ‘재창조자’라는 호칭이 직원에게 변화를 주도할 존재라는 상징을 부여하는 동시에, 역량·재교육 요구 수준을 높이려는 압박 메시지로도 작용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액센추어의 재정 상황 역시 이러한 전략 변화의 배경으로 거론된다. FT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디지털 전환 수요가 급증하면서 액센추어 시가총액이 한때 2천600억달러를 넘어섰으나, 최근 컨설팅 업계 성장세가 둔화하며 약 1천500억달러 수준으로 낮아졌다고 전했다.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과 기술 투자 패턴 변화 속에서, 회사가 ‘재창조’를 내세워 성장 동력을 재확보하려 한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컨설팅 업계에서 이 같은 명명 전략이 낯선 일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영국(UK) 시티런던대 베이스 경영대학원의 앙드레 스파이서 조직행동학 교수는 FT와의 인터뷰에서 컨설팅 업계에서는 “새롭고 화려한 전문 용어가 실제 역량이나 지식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전문성과 시장과의 관련성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재창조자’와 같은 표현이 단조로운 업무를 새롭고 흥미로운 것으로 보이게 만들 수 있지만, 동시에 조직 안에서 혼란을 증폭시키고 구성원 간 신뢰를 떨어뜨리며 부조리를 늘릴 위험도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언어·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의 우려도 제기됐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언어·커뮤니케이션학을 가르친 데버라 캐머런 전 교수는 직원 지칭 용어가 실제 종사자들이 경험하는 업무 현실과 지나치게 괴리될 경우, 구성원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이 되거나 조롱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액센추어가 채택한 ‘재창조자’라는 호칭이 이러한 위험 영역에 포함될 소지가 있다며, 기업이 상징적 언어를 도입할 때 구성원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면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대기업들이 직원의 역할과 정체성을 부각하기 위해 독특한 호칭을 도입한 전례는 적지 않다. FT에 따르면 미국(USA)의 월트디즈니는 창의적 기획과 엔지니어링을 결합한 인력을 ‘창안자(imagineer)’라고 불러왔고, 아마존(Amazon)은 숙련된 개발자를 지칭할 때 ‘닌자 코더(ninja coder)’ 등 상징적인 표현을 사용한 바 있다. 이러한 명명 관행은 기업 브랜드 스토리와 인재상 메시지를 압축적으로 전달하는 도구로 활용돼 왔다.
이번 액센추어의 ‘재창조자’ 호칭 도입은 AI 전환기 글로벌 기업들이 어떻게 자사 브랜드와 인력 전략을 재구성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다만, 새로운 용어가 구체적인 업무 변화·권한 확대·역량 개발 지원과 연결되지 않고 과장된 수사로 비칠 경우, 조직 내부 신뢰도와 소통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AI를 매개로 한 기업 재편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이러한 상징적 언어 전략이 실제 조직 문화와 산업 전반에 어떤 영향을 남길지 국제사회도 주목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