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1년, 어디까지 사과할 것인가”…국민의힘, 윤석열 절연론 두고 내홍
12·3 비상계엄 사태를 둘러싼 책임 공방이 1년을 맞으며 국민의힘 내부가 거세게 요동치고 있다. 당 지도부의 계엄 사태 사과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 선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강경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가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면서 갈등이 고조되는 양상이다.
국민의힘은 계엄 선포 1년을 사흘 앞둔 11월 30일, 내년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계엄에 대한 공식 사과 여부를 두고 깊은 딜레마에 빠진 모습이다. 중도층 확장을 위해서는 분명한 사과와 반성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이를 내란 프레임 수용으로 보는 핵심 지지층 반발 사이에 당 지도부가 끼어 있는 구조다.

논란의 중심에는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가 자리하고 있다. 장 대표는 최근 전국 수회 집회에서 계엄 사태를 언급하며 28일에는 “책임 통감”, 29일에는 “국민의힘이 부족했다”고 말해 이전보다 한 발 물러선 태도를 보였다. 다만 그는 같은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의회 폭거와 국정 방해가 계엄을 불러왔다”, “우리가 갈라지고 흩어져서, 계엄도 탄핵도 막지 못했고 이재명 정권의 탄생도 막지 못했다”고 말해 책임 소재를 더불어민주당과 야권에 돌리는 해석을 낳고 있다.
이처럼 애매한 메시지를 두고 당내에서는 “보다 분명한 사과와 함께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결별을 선언해야 한다”는 요구가 분출하고 있다. 호남 출신 양향자 최고위원은 전날 장 대표가 참석한 국민의힘 국민대회 행사에서 ‘불법 계엄 방치에 대한 반성’을 거론했고, 이에 항의하는 일부 지지자들을 향해 “이런 모습 때문에 우리 국민이 국민의힘에 신뢰를 안 주는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쏘아붙였다.
수도권 의원들도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지역구인 배현진 의원은 같은 날 윤석열 전 대통령을 “천박한 김건희의 남편”이라고 지칭하며 “처참한 계엄 역사와 우리는 결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선 긋기를 공개 요구한 발언으로 해석되며, 계엄 1년을 계기로 한 노선 수정론에 힘을 보탰다.
당내 소장파 의원들 사이에선 집단행동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이들은 지도부 차원의 공식 사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의원 개개인이 따로 사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재섭 의원은 27일 기자들과 만나 참여 예상 인원을 20명 수준으로 제시하며 “의원 대다수는 아주 심각한 위기의식과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계엄 사태에 대한 명확한 선 긋기가 없을 경우 지방선거에서 치명적인 역풍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그러나 계엄 사과 반대 여론도 작지 않다. 당내 강경파는 탄핵 직후 비상대책위원회 출범 시점에 이미 여러 차례 사과가 이뤄졌다며, 지금 다시 고개를 숙이는 행위 자체가 국민의힘을 ‘내란당’으로 규정하려는 더불어민주당의 정치적 프레임에 스스로 갇히는 결과가 된다고 주장한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전날 “어쨌든 6시간 계엄이었다. 그런데 민주당과 이재명 정권은 1년 내내 내란 몰이를 하고 있지 않으냐”며 “우리는 내란 몰이에 절대 굴복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짧은 계엄 선포를 과장된 내란 프레임으로 확장하려는 여권의 정치 공세에 당이 휘말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셈이다.
정치적·법적 변수도 강경 기류를 부추기고 있다. 내란주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추경호 전 원내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됐고, 영장실질심사(다음 달 2일)를 앞두고 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연일 “영장은 부당하다”는 논리를 앞세우며 기각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와 별개로 영장 청구 행위 자체를 제1야당에 대한 정치적 공격으로 규정하는 인식이 당 안팎에 퍼져 있다.
장동혁 대표가 계엄 1년 당일에 맞춰 대국민 메시지를 낼지, 또 낸다면 어느 정도 수위를 택할지가 최대 관전 포인트다. 사과 수위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에 따라 당내 계파 갈등이 폭발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반면, 애매한 태도를 이어갈 경우 중도층 이탈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존재한다.
국민의힘 지도부 관계자는 “다들 사과하라고만 하는데 모든 것을 결집해야 하는 당 대표는 국민 갈등, 당내 갈등, 당원의 의사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현명한 결정을 해야 하는 입장”이라며 “장 대표가 많은 의견을 들으며 고민하고 있고, 이제부터는 대중과 소통하며 메시지의 수위 등을 조정해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계엄 1년을 둘러싼 평가와 책임 논쟁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국회와 정치권은 계엄 사태와 관련된 수사·사법 절차의 향방을 지켜보며 사과 수준과 시기,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관계 재정립 문제를 놓고 한층 더 치열한 공방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