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건강검진 도입한 세란병원…정밀 예측으로 검진판 바꾼다
인공지능이 건강검진의 판을 바꾸고 있다. 서울 종로구 세란병원 종합검진센터가 올해부터 도입한 다수의 의료 인공지능 솔루션이 실제 검진 과정에 적용되면서, 수검자들은 “미래 의료 현장에 들어선 느낌”이라고 입을 모은다. 유방암과 폐암을 비롯해 심부전, 심혈관 질환, 치매 관련 뇌 위축까지 한 번의 검진 과정에서 AI가 정밀 분석을 돕는 구조가 갖춰지며, 향후 건강검진 시장 재편의 분기점으로도 거론된다.
세란병원 종합검진센터는 올해 루닛, 코어라인소프트, 메디컬에이아이, 메디웨일, 휴런 등 국내 의료 AI 기업의 솔루션을 대거 도입했다. 자기공명영상과 심전도, 망막 사진, 흉부 X선 및 CT 등 다양한 검사 데이터를 AI가 먼저 분석하고, 이후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다시 확인하는 이중 판독 체계를 적용한 것이 특징이다. 사람과 AI가 각각 한 번씩 교차 검증하는 구조로, 검진 결과의 신뢰도와 안정성을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다.
영상 진단 분야에서는 루닛과 코어라인소프트의 솔루션이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세란병원에서 유방촬영 및 흉부 X선 검사에 들어가는 순간 루닛의 인사이트 MMG와 인사이트 CXR가 자동으로 적용돼 영상을 분석한다. 인사이트 MMG는 유방촬영 영상에서 미세한 종괴나 석회화 패턴을 탐지해 유방암 의심 부위를 표시하고, 인사이트 CXR는 흉부 X선에서 폐결절 등 이상 소견을 찾아내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판독을 보조한다.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 미세 변화까지 확률 기반으로 표시해 놓기 때문에, 조기 발견률을 높일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폐암 검진에서는 코어라인소프트의 에이뷰 엘씨에스가 투입된다. 이 솔루션은 딥러닝 기반 인공지능이 흉부 CT 영상을 정밀 분석해 미세한 폐결절을 검출하고, 결절의 크기와 형태, 밀도 등을 종합해 폐암 위험도를 산출한다. 기존에는 숙련된 전문의가 일일이 슬라이스를 확인해야 했던 작업을 AI가 먼저 빠르게 훑어내면서, 판독 효율과 검출 민감도를 동시에 끌어올리는 구도가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폐암처럼 조기 발견이 생존율과 직결되는 질환에서, 저선량 CT와 AI 판독의 결합은 검진센터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세란병원은 심장 분야에서도 AI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메디컬에이아이의 에티아 시리즈와 AiTiA LVSD는 심전도 데이터를 받아 인공지능이 특정 심부전 등 질환 발생 가능성을 점수와 위험도로 제시하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다. 전통적으로 심전도는 부정맥이나 허혈성 변화 등을 파형 눈으로 판독하는 데 집중돼 왔다면, AI 기반 분석은 방대한 학습 데이터를 토대로 위험 패턴을 수치화해 미리 알려주는 방식이다. 아직 증상이 뚜렷하지 않은 단계에서도 이상 신호를 포착할 수 있어, 향후 심부전 예방 관리 전략 수립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모은다.
심혈관 질환 예측에는 안과 영상과 AI가 결합된다. 메디웨일의 닥터눈 CVD는 망막 사진 한 장을 인공지능이 분석해, 향후 5년 내 심근경색과 뇌졸중, 관상동맥질환 등 주요 심혈관 질환 발생 위험을 3단계로 평가하는 솔루션이다. 망막 혈관은 인체에서 비침습적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유일한 혈관으로, 혈관의 굵기와 굴곡, 출혈과 삼출 등 미세한 변화가 전신 혈관 건강을 반영한다. 이 솔루션은 이러한 망막 혈관 패턴을 AI가 정량 분석해 위험을 등급화한다. 혈액검사나 심장 CT를 하기 전 단계에서, 비교적 간편한 안저 촬영만으로 미래 위험을 가늠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검진 패키지 내 활용도가 크다.
뇌 건강 분야에서는 휴런의 AD 솔루션이 적용된다. 이 인공지능은 뇌 MRI 영상을 기반으로 약 100개에 가까운 세부 뇌 영역을 자동으로 분할하고, 각 영역의 부피와 피질 두께를 정량 분석한다. 이렇게 얻어진 데이터를 토대로 뇌 위축 정도를 산출하고, 이를 종합해 이른바 뇌 나이를 제시한다. 기억력 저하를 호소하는 중장년층이나 치매 위험을 미리 알고 싶은 수검자들이 특히 관심을 보이는 영역으로, 정량화된 지표를 기반으로 추적 검사를 반복하면 뇌 위축 진행 속도까지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세란병원 종합검진센터는 현재 제공하는 건강검진 패키지에 메디컬에이아이의 에티아 시리즈와 AiTiA LVSD, 메디웨일의 닥터눈 CVD, 휴런 AD 솔루션을 옵션 항목으로 구성하고 있다. 검진 예약 시 수검자에게 각 AI 솔루션의 기능과 활용 목적을 설명하고, 본인이 원할 경우 추가 검사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병원 관계자는 “AI 검진 항목은 선택 옵션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미선택자보다 선택하는 수검자가 더 많은 상황”이라며 “예측과 조기 발견에 대한 수요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국내 의료AI 업계에서는 세란병원 사례를 건강검진 분야 AI 상용화의 대표적인 모델로 주목하고 있다. 다양한 질환별 솔루션을 한 검진센터에 묶어 통합 제공하는 방식은, 개별 병원이나 기업 단위에서는 구현하기 어려운 협업 구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수검자 선택 데이터를 통해 어떤 질환, 어떤 예측검사가 실제 시장에서 높은 선호를 보이는지 확인할 수 있어, 향후 제품 고도화와 신규 서비스 기획의 지표로도 활용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AI 검진 도입이 단기간에 건강검진 시장 전반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지만, 정확도 검증과 데이터 활용 윤리, 비용 대비 효과 등은 계속해서 점검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한다. 건강검진 패키지에 포함된 AI 솔루션이 실제로 질환 발견률을 얼마나 높였는지, 불필요한 추가 검사나 과잉 진료를 유발하지는 않는지에 대한 장기 데이터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종합검진센터를 중심으로 의료 인공지능이 실사용 단계에 들어선 만큼, 건강검진이 단순한 현재 상태 점검을 넘어 미래 질환 위험을 수치화하고 관리하는 방향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산업계는 세란병원 사례와 같은 AI 기반 검진 모델이 실제 시장에서 안착할 수 있을지,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제도와 수가 체계가 어떻게 마련될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