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 T도 보험 탄다”…중국, 고가혁신신약 별도트랙 개설
고가 혁신치료제에 대한 새로운 보험 트랙이 중국에서 열리며 바이오 시장 구조 변화가 가속되는 양상이다. 기존 국가급여의약품목록 중심의 단일 구조에서, 상업보험이 고가 세포치료제와 차세대 항암제의 주요 진입 채널로 부상하는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중국이 고부가가치 치료제에 대해 별도 시장을 설계하기 시작한 정책 신호로 해석하며, 향후 가격 전략과 글로벌 신약 진입 속도에 영향을 줄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에 따르면 중국 국가의료보장국은 7일 첫 번째 상업 보험 전용 혁신 신약 목록을 발표했다. 적용 시점은 2025년 1월 1일로, 혁신성과 임상적 가치가 높지만 가격이 국가급여의약품목록 기준을 크게 상회하는 약제를 중심으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특히 키메라 항원수용체 T세포 기반의 CAR T 세포치료제 5종이 포함되며 고가 세포유전자치료제가 상업보험을 통해 시장에 진입하는 구조가 구체화됐다.

이번 목록은 약 1년간의 심사 과정을 거쳐 확정됐다. 중국 정부는 총 121개 의약품을 대상으로 검토를 진행했고 이 가운데 24개 약물의 가격을 협상했다. 최종적으로 19개 약물이 상업 보험 전용 혁신 신약 목록에 올랐다. 국가급여목록과는 별도로, 상업보험사가 이 목록을 토대로 보장 설계를 할 수 있도록 한 점에서 보험 시장과 바이오 산업 간 연계 구조가 강화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선정된 품목을 보면 암 치료제가 14개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고령 인구를 겨냥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와 고셔병, 신경모세포종 등 소아 희귀질환 치료제도 포함됐다. CAR T, T세포 인게이저, 이중특이항체와 같이 면역세포 조작이나 표적 단백질을 복수로 겨냥하는 차세대 면역항암제 중심 구성이라는 점에서, 중국이 고난도 바이오 신약을 상업보험의 대표 포트폴리오로 삼으려는 방향성이 드러난다는 분석이 나온다.
눈에 띄는 지점은 중국 토종 기업뿐 아니라 글로벌 제약사의 혁신약도 함께 묶였다는 점이다. 미국 다국적 제약사 화이자와 일라이 릴리, 일본의 다케다와 에자이 등이 개발한 약제가 목록에 포함됐다. 상업보험 트랙이 사실상 중국 내외 기업을 막론한 고가 혁신신약의 공통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된 셈이다.
상업보험 목록의 상징성은 CAR T 치료제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이번에 포함된 5개 CAR T는 혈액계 악성 종양을 주요 적응증으로 하며, 포순카이트, JW테라퓨틱스, 그라셀 바이오테크놀로지스, 레전드 바이오테크, 카스젠 테라퓨틱스가 개발한 제품이다. 현재 중국에서 허가된 CAR T는 총 8개로, 이 가운데 5개가 상업보험 전용 혁신 신약으로 지정됐다. 고가 치료제 중에서도 실제 임상 활용과 시장 확대 가능성이 높은 제품을 우선적으로 끌어올린 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가격 수준을 보면 상업보험 트랙이 필요한 이유가 선명해진다. 그라셀 테라퓨틱스 제품은 1회 주입당 99만9000위안 수준으로 알려져 있으며, JW테라퓨틱스의 CAR T는 1회 주입에 130만위안에 달한다. 나머지 3개 제품도 모두 100만위안 이상으로, 단일 시술 비용이 우리 돈 수억 원대에 이르는 셈이다. 국가급여의약품목록이 커버하는 기본 보장 범위를 크게 상회하는 가격대로, 공적 보험만으로는 재정 부담이 극도로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특히 이번 제도는 기존 국가급여목록이 상대적으로 가격이 안정된 표준 치료제 중심으로 설계된 한계를 보완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공보험이 감당하기 어려운 고가 혁신약을 상업보험 전용 트랙으로 분리함으로써, 공적 재정과 민간 자본이 역할을 분담하는 구조로 전환하려는 것이다. 협회 관계자는 국가급여의약품목록과 상업 보험 간 이중 구조가 중국 신약 가격 정책과 시장 전략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시장 측면에서는 상업보험이 고가 치료제의 실질적인 확산 채널로 부상할 여지가 크다. 보험사가 혁신 신약 목록을 기반으로 다양한 특약 상품을 설계하면, 환자 입장에서는 자기부담금을 일정 수준까지 줄이면서 CAR T와 희귀질환 치료제 등 고가 약제에 접근할 수 있는 선택지가 넓어진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고부가가치 헬스케어 상품을 통해 차별화된 고객 확보와 장기 유지율 제고를 노릴 수 있어, 산업과 보험이 동시에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글로벌 비교 차원에서 보면 중국의 행보는 고가 혁신신약에 대한 별도 재정 트랙을 구축하려는 주요국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미국에서는 민간 보험과 메디케어가 CAR T 등 고비용 약제에 대한 별도 지불 모델을 도입해 왔고, 유럽 국가들도 성과 기반 지불, 분할 지불 모델 등을 활용해 공보험 재정 부담을 조정해 왔다. 중국은 이와 달리 상업보험 전용 혁신 신약 목록이라는 형태를 통해, 공보험과 민간 보험의 역할을 제도 차원에서 명확히 구획하려는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책·규제 측면에서는 고가 혁신약에 대한 국가의 심사 권한을 유지하면서도, 재정 부담은 민간 보험과 공유하는 구조가 강화될 전망이다. 상업보험 트랙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국가의료보장국 심사를 통과해야 하므로 임상적 유용성과 안전성, 비용 대비 효과성에 대한 일정 수준의 평가 체계가 작동할 수밖에 없다. 동시에 상업보험이 실제 보장 범위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약가 협상과 지불 조건을 추가로 조정할 수 있어, 제약사와 보험사 간 새로운 형태의 협상 메커니즘도 확대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가 중국 CAR T 시장 확대의 전환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고가 구조 때문에 제한적 환자군에 머물렀던 CAR T와 차세대 항암제가 상업보험을 통해 가격 장벽을 일정 부분 완화할 수 있다면, 실제 투여 환자 수 증가와 함께 실사용 데이터 축적 속도도 빨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후속 적응증 확대와 차세대 제품 개발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중국 내 세포유전자치료제 생태계 전반의 성장 촉매 역할을 할 여지도 있다.
또한 국가급여목록과 분리된 상업용 보험 트랙이 생기면서 제약사 입장에서는 가격 전략 수립의 선택폭이 커지고 있다. 공보험 진입을 목표로 한 저가 전략만이 아니라, 상업보험을 겨냥한 프리미엄 가격 전략과 고부가가치 포지셔닝이 동시에 가능해지는 구조다. 협회는 보험 기반의 고가 혁신약 활성화 모델이 중국에서 본격 구축될 수 있다며, 향후 다국적 제약사와 국내 바이오 기업의 중국 진출 전략에 변수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정부가 이번 제도를 통해 보내는 메시지는 고부가가치 치료제에 대한 지속 가능한 시장 기반을 자국 내에서 마련하겠다는 의지로 정리된다. 글로벌 바이오 기업에는 상업보험을 활용한 고가 혁신신약 출시 통로가 열리면서, 중국 시장에 대한 접근 전략을 재정비할 유인이 커졌다. 산업계는 상업보험 전용 혁신 신약 트랙이 실제로 고가 치료제의 보편적 사용을 이끌 규제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그리고 공보험과 민간 보험 간 역할 분담이 어느 수준에서 안착할지 지켜보고 있다.
